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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영도체제 1개월, “계승과 조기 안정화”
<기고> 북한의 보도 및 공개 영상물의 종합분석 -유영구
2012년 01월 16일 (월) 16:32:56 유영구 tongil@tongilnews.com

유영구 (월간 <민족21> 편집기획위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거와 함께 시작된 김정은 영도체제의 1개월은 ‘계승과 조기 안정화’로 요약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의 서거에 대비한 치밀한 매뉴얼이 존재하는 듯이 일사불란하게 작동하는 김정은 체제를 보면서 외부세계는 북한에서 혼란이 발생하지 않는데 대해 안도하면서도 정작 ‘조기안정화’의 실태와 메커니즘은 파악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의 ‘계승과 조기안정화’를 보여주는 출발점은 지난해 12월 17일(토) 오전 8시30분 김 위원장의 서거에서 19일(월) 정오에 서거발표에 이르기까지 ‘철통보안’이 이뤄진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내외의 정보망은 김 위원장의 서거를 놓쳤을 뿐 아니라 김정은 영도체제의 출발을 위한 치밀한 기획에 대한 정보도 놓쳤다. 북 <조선중앙TV>가 1월 8일 방영한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겸 최고사령관의 이전 활동에 대한 기록영화(“백두의 선군혁명위업을 계승하시여”)에 의해 그의 군사부문에 대한 지도력 행사는 적어도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의 입학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군부대 시찰 등 여러 증거들이 확인됐다. 북한 외부세계에 떠돌던 김정은 관련 정보에 터무니없는 오류가 많았음을 느끼게 해주는 기록영화였다.

김 위원장의 서거 당일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과 중앙군사위원회 등의 최고위 성원들이 참가한 대책회의가 열렸을 것이고, 이 자리에서 부고(“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에게 고함”)의 방향과 장의위원회 구성, 국가장의위원회 공보 등을 확정했고 이를 19일 발표했는데 부고는 김정은 영도체제의 출범을 세상에 알리는 성격을 지녔다. 17일자로 작성된 부고의 주체는 당 중앙위원회.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 등 당과 국가의 최고기관들을 망라한 것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부고에 ‘김정은 계승’ 명시

부고는 “오늘 우리 혁명의 진두에는 주체혁명위업의 위대한 계승자이시며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의 탁월한 령도자이신 김정은 동지께서 서계신다”, “김정은 동지의 령도는... 주체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빛나게 계승완성해나갈 수 있는 결정적담보로 된다”,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 인민들은 존경하는 김정은 동지의 령도를 충직하게 받들고 당과 군대와 인민의 일심단결을 굳건히 수호하며 더욱 철통같이 다져나가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아냄으로써 김정은의 권력계승을 내외에 확정적으로 선포했던 것이다.

그리고 장의위원회 232인의 명부(<표1> 참조)를 보면 당 중앙위원회 정위원 115인, 후보위원 100인, 당 중앙검위원회 위원 15인, 우당대표 2인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당 중앙위원회 정위원과 후보위원의 명부를 2010년 9월 28일 당대표자회에서 통과된 당 중앙위원회 명부와 비교해보면 정위원 9명, 후보위원 5명이 누락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가운데 김정일과 조명록(국방위 제1부위원장, 총정치국장, 군 차수), 박정순(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 사망자를 제외하면 1년 3개월 만에 누락된 인원은 정위원 6명, 후보위원 5명에 그쳐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누락된 인원에는 철직된 것으로 알려진 주상성(전 인민보안부장), 홍석형(전 당 계획재정부장), 류경(전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 처형설) 등과 정위원 중에 리히헌(보직 미확인), 박수길(내각 부총리 겸 재정상), 전진수(평양시 위수사령관), 정호균(군 대장) 등, 후보위원 중에 김격식(전 총참모장, 서부대연합부대 사령관), 로경준(군 중장), 최기룡(자강도 인민위원회 위원장), 한흥표(함경북도 인민위원회 위원장)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이 정치무대에서 사라진 것에 대해 여러 가지 설명과 상상이 가능하겠지만 대략 업무상 과실로 인한 철직, 사망 또는 공직활동이 불가능할 정도의 질병 등으로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국결정서 ‘김정은 계승’ 재확인

김정은 영도체제의 ‘계승성’에 대해서는 부고에서 뿐 아니라 지난 해 12월 30일 당 정치국회의에서 채택된 정치국결정서(“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유훈을 받들어 강성국가건설에서 일대 앙양을 일으킬 데 대하여”)와 당 중앙위원회․중앙군사위원회 공동구호 및 신년공동사설에서 거듭 확인됐다. 정치국결정서는 ‘선군사상과 선군혁명노선’의 견지, ‘새 세기 산업혁명의 불길, 함남의 불길’에 의한 경제강국건설 등 김정일노선의 계승을 분명히 하였다. 정치국결정서.공동구호.신년공동사설이 담고 있는 모든 정책방향은 계승 정신에 기초한 것이었다(이에 대해서는 「북한의 2012년 주요 대내정책 방향」「새 세기 산업혁명의 기치, 함남의 불길-김정일 위원장의 현지지도로 보는 경제유훈」 참조).

김정은의 승계에 대해 정치국결정서는 “오늘 우리 혁명의 진두에는 김정일동지의 유일한 후계자이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서계신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우리 당의 통일단결과 령도의 유일중심으로 높이 받들어 모시고 정치사상적으로, 목숨으로 결사옹위하며 정치사상강국의 위력을 더욱 높이 발양”시켜야 한다고 밝혀 그가 ‘유일한 후계자’, ‘통일단결과 령도의 유일중심’이라는 것을 거듭 확인했다. 이것은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와 유일적 영군체계의 최고수위는 오로지 김정은 최고사령관이라는 것을 선언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정치국회의에서는 ‘김정일의 10월 8일 유훈’에 따라 김정은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모시였다는 것’을 선포하는 행사를 가졌다. 12월 30일 정치국회의에 따라 김정은은 사실상 최고지도권을 갖게 되었고 앞으로 당 총비서․중앙군사위원장 및 국방위원장으로 추대되는 절차를 남겨 놓고 있다.

‘조기 안정화’의 근거들

김정은 영도체제의 조기 안정화에 근거로는 당 정치국 위원.후보위원 및 군 수뇌부의 변동이 없고 국정운영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우선 부고를 발표한 12월 19일과 영결식을 거행한 28일 사이에 다섯 차례 김정은의 조문행사가 진행됐는데 이때 정치국 성원들과 군 수뇌부가 변함없이 김정은을 수행한 것으로 확인됐다(<표2> 참조). 그리고 영결식 행사에서 영구차 오른편으로 김정은, 장성택(국방위원회 부위원장.당행정부당), 김기남(당 선전담당비서), 최태복(당 교육과학담당비서) 등 4인이, 왼편으로 리영호(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군총참모장), 김영춘(국방위 부위원장.인민무력부장), 김정각(군총정치국 제1부국장), 우동측(국가안정보위부 제1부부장) 등 4인이 각각 호위하면서 인민군 육해공군 의장대를 사열했다. 당시 영구차 호위의 요인 배치가 절묘해 보여 많은 관심을 끌었는데 호위 요인들이 당과 군대의 핵심인물들이고 실세였기 때문이다. 이날 국내 보도에서는 7인시대가 열렸다느니, 8인시대가 열렸다느니 혹은 장성택의 위상이 높아졌다거나 장성택과 군부 실세들의 집단지도체제가 시작됐다는 식의 이상한 분석이 많았다.

그러나 정치국 상무위원들인 김영남(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영림(내각 총리), 리영호 등에서 국가부문 인사들을 제외하면 리영호가 호위 요인으로 선택될 수밖에 없다. 정치국 위원들인 김영춘, 전병호(내각 정치국장 겸 당책임비서), 김국태(당 중앙위 검열위원장), 김기남, 최태복, 양형섭(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강석주(내각 부총리), 변영립(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서기장), 리용무(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김경희(당 경공업부장) 등에서 국가부문 인사들과 김경희(여성)를 제외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김영춘.김기남.최태복이 호위 요인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김정은을 포함해 호위 요인 5명이 결정된 셈이고 정치국 후보위원들인 김양건(당 대남담당비서), 김영일(당 국제담당비서), 박도춘(당 경제담당비서), 최룡해(당 근로단체담당비서), 장성택, 주규창(당 기계공업부장), 김락희(내각 부총리), 태종수(당 총무담당비서), 김평해(당 간부담당비서), 김정각, 우동측, 김창섭(국가안전보위부 정치국장), 문경덕(당 지방담당비서.평양시당 책임비서), 리태남(내각 부총리) 등 가운데 장성택.김정각.우동측 3인을 호위 요인으로 선발했는데 이들의 면모를 보면 군의 정치.보위사업 담당자들이다.

장성택이 김정은의 바로 뒤에 위치를 잡은 것은 ‘서열 상승’으로 보기보다는 김정은의 고모부라는 ‘가족관계’가 작용한 것으로 보는 게 현실적합성이 있다. 1월 1일 김일성.김정일 참배행사 시에 정치국 정위원.후보위원들의 호명 순서에서 장성택이 원래의 순서로 되돌아간 것을 감안해야 하고, 같은 날 김정은의 ‘근위서울 류경수 제105땅크사단’ 시찰에 관한 영상물을 보면 장성택의 위상에 특별한 변화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장성택의 ‘섭정’ 혹은 장성택과 군부 집단지도체제의 결합 운운하는 것은 현실과 거리가 먼 설명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은 12월 29일 중앙추도대회를 열어 국상을 결속하고, 앞에서 언급한대로 12월 30일 당 정치국회의를 개최해 김정은 체제의 가동을 위한 모든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중앙추도대회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우리의 전도에는 계승자이신 김정은 동지께서 서 계신다”며 “김정일 동지의 사상과 영도, 담력과 배짱을 이어받은 최고령도자”라고 선언하고 김기남 당 비서는 "김정은 동지의 영도 따라 김정일 동지의 사상과 위업을 빛나게 계승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김정일 영도체제의 출범을 거듭 확인했다. 당 정치국회의를 계기로 북한에서는 2012년 1월 1일부터 김정일 영도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주목되는 김정은의 ‘105땅크사단 시찰’ 영상물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신년 초하루를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영전에 경의를 표하는 참배행사로 시작했고 이 자리에 당 정치국 성원들과 당 중앙군사위원회 성원, 국방위원회 성원들이 참가함으로써 김정은 영도체제의 지도부가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내외에 과시했다. 그는 이날 ‘근위서울 류경수 제105땅크사단’(6·25전쟁 당시 서울에 첫 입성한 전차부대)의 시찰에 나섰는데 이 부대는 김정일 위원장이 1960년 8월 25일(선군영도 개시일, 당시 18세) 김일성 주석과 함께 방문했던 부대라는 ‘역사성’을 갖고 있다.

이날 보도에서는 김정은에 대한 호칭이 중요하다. 아나운서는 그에게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우리 당과 국가, 군대의 최고령도자’로 호칭하면서 ‘경애하는’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했다. 북한의 보도 및 영상물에서 지도자 호칭문제는 내부 분위기를 가늠하는 근거라 할 수 있는데, 현재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군 최고사령관이고 국가와 군대의 최고직책을 갖는 절차를 밟지 않았지만 ‘사실상’ 최고수뇌 직책을 모두 갖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호칭문제를 조금 더 보자면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서는 부고에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위대한 령도자’, ‘혁명과 건설의 영재’, ‘혁명적 도덕의리의 최고화신’, ‘정치의 대가, 천출명장’, ‘민족의 어버이, 조국통일의 구성’, ‘사회주의와 정의의 위대한 수호자’ 등이 등장했고 ‘수령’ 호칭은 김일성 주석에게만 사용되었다. 부고에서 김정은에게는 김정일과 동일한 호칭과 수식어도 있고 다른 것도 있었음이 흥미롭다. 김정은에게는 ‘주체혁명위업의 위대한 계승자’,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의 탁월한 령도자’라는 수식을 붙였다. 그리고 12월 30일 당 정치국회의 보도와 당 중앙위원회.중앙군사위원회의 공동구호에서는 김정일에게 붙여왔던 ‘경애하는’이라는 수식어를 김정은에게도 사용했다. 신년공동사설에서는 김정은에게 ‘경애하는’, ‘주체혁명위업의 위대한 계승자’,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최고령도자’, ‘우리 혁명무력의 최고령도자’, ‘백두의 천출명장’, ‘절세의 애국자’, ‘희세의 명장’, ‘우리 당과 국가, 인민의 최고령도자’ 등을 사용함으로써 김정일과 거의 같은 급의 수식어를 사용했다. 이러한 호칭 및 수식어도 김정일 생전에 이미 유훈으로 결정된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을 낳게 한다.

이날 105땅크사단 시찰에는 군 수뇌부 가운데 리영호(군 총참모장), 김정각(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 박재경(인민무력부 부부장), 현철해(군 총정치국 상무부국장) 등과 장성택(국방위원회 부위원장), 황병서(당 조직지도부 군담당 부부장) 등이 수행했다. 이들 면면은 김정은 영도체제의 군사지휘부를 이루는 핵심인물들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대신에 박재경이, 김경옥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군담당) 대신에 황병서가 각각 수행했다는 정도일 것이다. 김정은 체제의 군사지휘부 핵심들 가운데 105땅크사단의 수행인원 이외에 중요한 인사들로는 김명국(총참모부 작전국장), 김원홍(총정치국 조직부국장), 오금철(총참모부 부총참모장), 김영철(정찰총국장) 등을 꼽을 수 있다.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105땅크사단 시찰은 이틀 만에 조선중앙TV의 기록영화(13분)로 방영됐는데 영상물을 이례적으로 신속히 공개한 것이었다. 이 영상물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북한문제 전문가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는데 그의 밝고 자연스럽고 여유로우면서도 활달한 모습, 부대 지휘관이나 병사들과의 과감하고 다정스러운 접촉, 그리고 시찰에 수행한 군사지휘부 핵심인사들에 대한 업무지시 모습과 그들의 ‘최고사령관 모시기’ 분위기 등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그가 눈물을 흘리는 군 지휘관을 다독거리며 손을 꽉 잡는다거나 군관들과 귀엣말로 대화하는 등의 장면도 있었다. 병실(내무반)과 병사식당 등에서 세심하게 하나하나 점검하는 등 전사들의 생활에 관심이 높은 최고사령관의 이미지를 보였다. ‘필요에 의한 연출’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관심을 끌었던 것이다. 그러나 1월 8일 공개한 기록영화로 인해 이런 활동이 전혀 놀랄 일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됐다. 국내외의 대부분의 언론은 ‘김정은 우상화’ 작업으로 보도하고 있지만, 이런 영상물에서 객관적인 정보를 획득하는 기회가 열리고 있다는 점도 유의하지 않을 수 없다.

105땅크사단 시찰 영상물에서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병실을 돌아보던 중에 “앞으로 기별 없이 찾아와 병실의 온도를 확인하겠다”고 발언한 대목을 아나운서가 소개한 것이 흥미롭다. 사전통고 없이 군부대를 방문해 전사들의 숙소를 돌아보겠다는 것은 전사들의 실생활과 사기를 수시로 파악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어서 전사들은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부대 지휘관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일 시대의 현지지도 및 시찰은 김 위원장의 최측근 인사들이 방문 단위에 미리 내려가 현지답사를 하고 모든 정황을 파악하고 준비한 뒤에 방문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김정은 관련 1월 8일 기록영화에도 김정일의 현지지도에 앞서 김정은이 군부대를 방문해 사전답사 및 준비를 갖추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것은 김일성 시대에 김정일이 수행했던 역할이기도 했다. 그런데 김정은이 사전통고 없이 군부대를 시찰하겠다고 한 점에서 ‘젊은 리더십’의 새 관행을 예고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1월 1일 신년음악회(“태양의 위업 영원하리”)를 관람했는데 이 자리에 정치국 성원들이 거의 대부분이 참석했다. 김일성.김정일시대의 정치적 관행의 하나였던 신년음악회는 늘 하듯이 진행됐다. 정치국 성원들 가운데 전병호, 김경희, 리태남 3인이 불참했는데 국상 기간에 건강상의 문제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정치국 성원이 아닌 오극렬(국방위원회 부위원장)도 참석했는데 그는 국상 기간 이래 군 원로로서 서열과 관계없이 중요한 행사에 리용무(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다음에 호명되는 경우가 잦았다. 이날 공연은 김정일을 기리는 것에서 출발해 김정은의 계승으로 매듭짓는 것이었다. 은하수관현악단이 공연하는 동안 뒤편의 대형스크린에 김정일과 김정은의 활동 동영상을 방영해 효과를 극대화했다. 이날로부터 보름만인 1월 15일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음악무용종합공연(“영원토록 받들리 우리의 최고사령관”)을 관람했는데 이 공연은 김정은에 대한 혁명송가 「발걸음」과 함께 새 혁명송가 「김정은 장군 목숨으로 사수하리라」등으로 구성됐다. 그는 김정일 회상곡으로 보이는 「그리움은 끝이 없네」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대외창구를 통한 ‘김정은 관련정보’ 우회적 공개

1월 1일의 행사로부터 열흘만인 1월 11일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군대가 건설을 책임지고 있는 평양 건설공사장의 시찰에 나서게 되는데 이 사이의 기간에 그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들이 북한 안팎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우선 북한의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1월 5일 김정은 부위원장에 대해 ‘사상이론의 천재’로 칭송하면서 16세에 “김일성 주석의 령군술과 그 업적에 대한 다방면적이고도 종합적인 론문을 대작으로 완성”했다고 주장했다. 그가 1982년 1월 8일생(생일에 대해서는 그동안 탈북자들의 정보가 있어왔는데, 1월 8일에 “백두의 선군혁명위업을 계승하시여”라는 기록영화를 공개한 것이나 김정은 혁명송가 「발걸음」 가사에 ‘1월의 정기’ ‘1월의 기상’ 등이 포함된 것에서 확인된다)이라고 할 때 16세라면 1998년으로 짐작된다. 이 무렵 북한에서 ‘선군영도’ ‘선군정치’가 정착되기 시작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즉 김정은은 ‘고난의 행군’의 극복과정에서 정착한 ‘선군영도’ ‘선군정치’라는 전투적 정치분위기 속에서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 입학한 것으로 보인다. 16세에 대학 예비반 혹은 특설반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예를 들어 김일성종합대학과 같은 일반 대학에서도 군사 복무자들을 위해 1년 과정의 예비반을 운영하고 있다).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은 포괄적인 군사업무를 교육하는 고등교육기관이다(군대의 정치사업.당사업을 관장하는 정치일군 양성대학은 김일성정치대학이고 그밖에 김정숙해군대학, 김책공군대학, 김혁군사대학, 김형직군의대학 등의 대학과 강건종합군관학교를 비롯한 여러 군관학교들이 있다).

<우리민족끼리>는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방대한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특히 군사분야에 관한 그이의 독창적이고 비범한 사상리론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최상의 경지”라고 극찬했다. 이 보도는 앞으로 김정은의 저작.담화 등이 출판물 형태로 공개될 것임을 예고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미주지역의 <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이 지난해 12월 30일 김철주사범대학 정기풍 교수(강좌장)와 만나 인터뷰한 내용(1월 6일 국내 인터넷언론 <자주민보> 보도)을 보면 김정은에 대한 ‘찬양’ 일색의 발언 속에 중요한 정보도 적지 않게 수록하고 있다. 정 교수의 발언은 조선로동당의 사전검열을 거친, ‘공개 허가’가 받은 내용이기 때문에 앞으로 공식문헌으로 확인될 것이다. 일단 ‘품격과 자질’, ‘천재적 예지와 과학적 통찰력’, ‘비범한 탐구와 사색’ 등 찬양의 언사를 걷어내면, 사상이론분야의 특징은 첫째, ‘백과전서적’이고 ‘독창적’이라는 점(군사사상과 이론 및 주체전법의 전일적인 과학이론체계 정식화,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과 관련된 여러 이론실천적 문제들에 대한 정식화), 둘째, 최첨단 과학기술의 성과를 집약하고 있는 점, 셋째, ‘인민성’으로 일관하고 있는 점 등으로 요약된다.

첫째 측면과 관련,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김정일 위원장이 문예부문에서 창안한 ‘종자론’에 기초해 ‘혁명과 건설의 모든 분야에 구현하는데서 나서는 과학이론적 문제들을 해명’했다고 정 교수는 주장한다. 이를테면 경제분야에서의 종자는 ‘사회주의 원칙을 확고히 고수하면서도 최대한의 실리를 보장할 수 있게 하는 것’이고, 실리추구에 있어 ‘실리가 인민대중의 자주적 요구를 실현하는데 얼마나 의의가 있는가’, ‘김정일의 인민사랑(이민위천)의 정치철학을 구현하는데 얼마나 부합되는가’를 종자로 삼아야 한다고 김정은이 설명했다는 것이다.

둘째 측면에서는 예를 들어 컴퓨터가 경제활동에서 중요한 작용을 하는 최첨단 과학기술시대에 ‘잉여가치학설’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비롯한 이론적 처방을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이미 내렸고, 곧 출판될 예정이라고 정 교수는 공개했다.

셋째 측면은 ‘인민대중이 알아듣기 쉬워서 사상이론활동이 인민대중 자신의 것으로 되게 한다’는 것으로써, 이를테면 ‘선군의 원리’를 설명할 때 알아듣기 쉽게 ‘총대가 중요하다’고 하면서 ‘선군의 원리를 인민대중이 쉽게 알아먹고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사상활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상이론(철학.정치학.경제학) 분야의 지식인(필자)들의 고민이 바로 일반대중(독자)들이 알아듣는 방식으로 서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사실 이것이 보통 어려운 과제가 아니다. 정 교수는 또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인민성’을 늘 실천해왔다고 주장하면서 국상 기간에 그가 취한 조치, 즉 최고영도자를 잃은 인민들의 슬픔을 줄여주는 방향에서 애도행사를 조직하는 한편, 12월 추위 속에서 인민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조치한 사례(온풍장치 버스 제공, 조의식장 가설건물, 수건이나 모자 쓴 채로 조상하기, 6만여개의 발열기와 온열기구 공급, 조의식장에서의 꿀물.설탕물.보리차.결명자차 제공 등)를 들었다. 12월 19일 김정일 부고를 발표한 당일 오전 8시에 김정은 부위원장은 김정일 위원장이 이미 16일에 비준한 ‘평양 시민들에게 설명절을 앞두고 물고기를 공급’하도록 한 문건을 재차 비준해 담당부서에 내려 보낸 것도 ‘인민성’의 예라는 것이 정 교수의 첨언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김정은의 사상이론분야에서의 활동은 앞으로 발표될 저작들을 통해 확인될 것인데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상이론을 계승하고 이를 새롭게 정식화.체계화하는 내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사상.정치분야, 경제분야, 군사분야 등에 관해 연구할 때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인의 저작들을 비교하면서 이론과 노선․정책의 제반 측면을 분석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김정은 군사영상물 “백두의 선군혁명위업을 계승하시여” 분석

이제 지난 한달 간의 보도 및 공개 영상물 가운데 ‘김정은 관련 정보’를 가장 많이 담고 있는 1월 8일에 공개된 기록영화 “백두의 선군혁명위업을 계승하시여”를 살펴보기로 한다. 국내의 일부 보수언론은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의 보도를 인용하면서 기록영화에 등장한 백마를 타고 달리는 모습, 자동보총을 잡고 살펴보는 모습 등을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의 선전물과 유사하다고 강조한 바 있는데 이는 북한의 전통을 모르는데서 오는 오해였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말 타는 모습은 주민들에게 매우 익숙한 아이콘이다. 김일성 주석은 항일무장투쟁 시기에 백마를 타고 다닌 적이 있었고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제3권(제7장)에 “백마에 대한 추억”이라는 절(節)이 있을 정도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군사부문 영도에 관한 기록영화에서도 그가 백마를 타고 달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렇게 보면 김정은의 백마를 타고 달리는 장면은 김일성-김정일의 체험을 반복하는 것이고 북한 주민들에게 김일성-김정일을 연상시키는 상징장치인 것이다.

기록영화에는 김정은이 자동보총을 유심히 살려보는 대목이 있는데 이에 앞서서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자동보총 2정을 들고 뭔가를 설명하고 그 뒤에는 오진우, 오극렬 등이 서 있는 장면이 있다. 사실 김정은의 자동보총 장면은 선군영도의 아이콘인 ‘총대 중시’의 정신을 강조하려는 의도를 반영한 것이었다. 기록영화에는 김일성 주석이 생애의 마지막 시기에 ‘김일성’ 이름이 새겨진 ‘백두산권총’을 오진우(전 인민무력부장 겸 총정치국장, 원수. 사망), 최광(전 총참모장, 원수. 사망), 리을설(전 호위사령관, 원수) 등 항일무장투쟁기의 혁명열사들에게 직접 수여하는 장면이 있다. 기록영화 “위대한 령장을 모시여(25)”에는 김하규(전 포병사령관, 대장. 사망), 박기서(전 평양방어사령관, 차수. 사망) 등이 ‘백두산권총’을 수여받는 장면이 있고, 기록영화 “누리에 빛나는 태양의 력사(7) 선군령장의 혁명적 동지애”에는 박송봉(전 당군수공업부 제1부부장, 사망)이 ‘백두산권총’을 수여받는 장면이 있다. 이것은 총으로 체제와 정권을 수호하고 혁명투쟁과 경제강국건설, 조국통일을 완수하라는 상징적 의식(儀式)이다. ‘백두산권총’의 기원은 김일성이 부친 김형직(일제강점기 조선국민회 등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으로부터 권총 2자루를 유품으로 받은 것에서 출발하는데 ‘총대’는 이른바 ‘만경대가문’, ‘백두산혈통’을 이어가는 상징물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김정은이 자동보총을 잡고 살펴보는 장면은 ‘총대 중시’에 의한 선군영도의 계승을 상징하는 것이지 소총을 쥐고 있는 푸틴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것이다.

이 기록영화는 ‘총대 중시’의 계승을 보여주는 여러 장면들을 담고 있는데 예를 들어 김정은이 ‘서울근위 류경수 제105땅크사단’에서 탱크를 몰고 달리면서 사격하는 장면(2010년 1월)과 관련하여 김정일이 과거에 탱크에 시승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김정은이 탱크에서 내려온 뒤 기념촬영을 하려는 듯 탱크 위에 서 있는데 그의 곁에는 항일빨치산 출신 최현(전 인민무력부장. 사망. 김 주석에 가장 충실성을 보인 군사지휘관으로서 그의 활동을 보여주는 영화 『혁명가』가 제작.방영되기도 했다)의 아들 최룡해(정치국 후보위원, 당비서, 당중앙군사위원, 대장)가 서 있었다. 이것 역시 항일혁명가 후예의 전통계승을 상징하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

군사지휘부의 ‘시스템 차원’에서의 김정은 지원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이미 육해공군을 비롯한 군종.병종.전문종 전체에 대한 지도력을 확고하게 발휘했다는 증거를 숱하게 보여주는 이 기록영화는 그가 이미 오래 전부터 조선인민군의 ‘사실상의’ 최고지휘관이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기록영화는 김정은의 군부대 방문 등 군사부문 지도 시에 리영호(총참모장)와 오금철(부총참모장), 김명국(총참모부 작전국장), 리명수(당시 국방위원회 행정국장), 현철해(총정치국 상무부국장), 김영철(정찰총국장) 등이 수행한 것을 보여준다. 김영춘(인민무력부장)과 김정각(총정치국 제1부국장)은 김정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수행하는 때에 함께 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가장 빈번하게 김정은을 밀착 수행한 군사요인은 오금철과 현철해였다. 오금철은 항일빨치산 출신 오백룡(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사망)의 아들이라는 점에서 김정은 보좌의 적임자였다고 할 수 있고, 군사직책으로 보더라도 군 작전분야에서 오금철, 군정치사업에서 현철해가 빈번히 김정은을 수행한 것은 자연스럽게 보인다. 김정은의 군부인맥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가 그를 떠받치고 있다는 증좌이기도 하다.

김정은이 각급 부대 시찰 시에 한 손에 무전기를 들고 있는 모습이 자주 포착된 점으로 보아 군사부문 지도가 실무적으로 진행됐음을 관측하게 한다. 각종 병기, 전투기술기재 참관 시에 직접 무기를 조작해보고 군용차량 및 군함에 탑승하고 전투기 등 군용기에 시승하고, 심지어 병사들의 군용배낭을 직접 메는 사진까지 공개했다. 국방공업 관련 공장 방문에서는 PC 모니터를 보면서 젊은 기술자들에게 말을 걸고 직접 마우스를 조작하기도 하는 등 젊은 군지도자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은, 기록영화를 보면 김정은이 군종.병종.전문종 등 각급 부대의 지휘관들과의 스킨십이 매우 빈번하였다는 점이다. 이것을 보면 1월 1일 105땅크사단 시찰에서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보여준 부대 지휘관 등과의 스킨십이 자연스러운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기록영화는 2010년 초부터 김정은 부위원장의 친필서명이 들어간 공식문건 10여개를 영상으로 보여주었는데 대부분이 군총치국 문건이었다. 예를 들어 2010년 1월 19일 인민군 총정치국이 작성한 “백두산 3대 장군의 령도사적을 빛내이기 위한 사업에 한생을 바쳐가고 있는 자료와 대책보고”라는 문건에 ‘동의합니다’라고 서명했다. 이것을 보면 그가 당대표자회가 열린 2010년 9월 28일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직책으로 공개되기 전에 이미 총정치국의 문건을 비준하는 위치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총정치국이 군의 정치사업.당사업을 관장하는 최고기관이라는 점에서 군대의 당조직의 제반 사업이 이미 김정은 대장의 지휘 하에 있었던 것으로 관측된다. 조명록 총정치국장이 2010년 11월 6일 사망한 것을 감안하면 그가 살아있을 때에도 총정치국의 업무지휘가 김정은 대장에게로 넘어가 있었다고 볼 수 있고, 총정치국의 김정각 제1부국장, 현철해 상무부국장, 김원홍 조직담당부국장, 한동근 선전담당부국장 등이 김정은 대장에 대한 보좌 시스템을 갖추어나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시스템 구축은 김정은 대장은 당과 국가.군대의 ‘후계자’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음을 의미하는데 ‘후계자 결정’ 시점과 관련하여 2009년 1월에 내정됐다는 국내 보도(<연합뉴스>)도 있었지만 북한당국에 의해 공개될 ‘김정은 연보’를 보아야 이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김정은의 정치활동 개시 시점이 ‘2003년’이라는 단편적인 정보가 북측에서 흘러나오는데 이것도 앞으로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만약 2003년이 옳다고 전제하면 1998년에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 들어가 예비반이나 특설반을 1년 거친 뒤에 4년간의 정규과정을 마치고 21세가 되는 2003년에 정치활동을 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김정은이 2009년 1월까지 6년간 군사부문에 대한 지도를 했던 것이고, 기록영화는 이 기간의 활동을 보여주는 장면도 적지 않았다).

기록영화는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재학시절에 『김일성군사선집』, 『혁명무력건설에 대하여(김일성 저작)』, 『우리 당의 군사사상과 선군정치에 대하여(김정일 저작)』등 선대의 군사저작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고 설명한다. 이 저작들에는 『김일성저작집』이나 『김정일선집』에 수록된 것도 있을 것이고,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는 군사기밀에 속하는 저작들도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아무튼 그가 군사부문에 정통한 최고사령관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처럼 군사부문 연구활동도 간단하게나마 소개한 것으로 보인다.

기록영화는 또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에 걸친 ‘계승성’과 ‘인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보여주는 장면을 편집하고 있다. 이를테면 김일성이 1945년 10월 14일 평양에서 김일성장군개선환영대회에 참석할 때의 모습과 김정일이 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출됨으로써 후계자임이 내외에 선포된 이후 김일성광장에서 주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모습 등과 김정은이 인민과 군대로부터 지지를 받는 모습을 편집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김정은의 서 있거나 걷는 모습에서 어느 때는 김일성을, 또 어느 때는 김정일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많아 북한 주민들도 기록영화를 보면서 놀랐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록영화는 마지막에 가서 “백두에서 개척된 수령님의 혁명위업은 백두산혈통으로 굳건히 계승될 것입니다. 김정일”이라는 자막을 내보냄으로써 ‘계승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기록영화는 김정은이 김정일에게 충성을 다했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설명했다. 그의 다음과 같은 발언이 자막으로 나올 정도였다. “나는 밤을 새워 일하는데 습관되여 일없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제일 기쁘고 행복한 때는 최고사령관동지께 기쁨을 드릴 때입니다. 그래서 며칠밤을 새우면서도 피곤한줄 모르고 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며칠밤을 새워 일하고도 최고사령관동지께 기쁨을 드리고 나면 쌓였던 피곤이 어느새 사라지고 온몸에 새 힘이 솟군 합니다. 혁명가들은 이 멋에 사는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김정일이 아들의 충실성과 뛰어난 자질과 능력에 대해 극찬하는 대목(“그는 지략도 뛰어나고 군사전법에 밝으며 다재다능한 천재 중의 천재”, “우리 대장은 아는 것이 많기 때문에 나라의 전반적인 부문들을 쉽게 틀어쥘 수 있고 누구나 우리 대장의 지도를 받게 되어 있다” 등)이 계속 이어졌다. 이것은 마치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김정일 위원장에게 한 극찬을 연상시킨다.

김정은의 ‘광명성 2호’ 발사 관여

조선중앙TV가 이 기록영화를 방영한 후 국내외 언론에서 가장 관심을 보인 것은 2009년 4월 ‘광명성 2호’(인공지구위성, 자체 개발한 시험통신위성/ 미국 등은 장거리로켓 시험발사로 이해) 발사에 김정은이 관여됐었다는 대목이었다.

광명성 2호의 발사 당시 김정은의 담력과 배짱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이 당과 국가의 민간 고위지도급 인사들에게 설명하는 모습이 있고 다음과 같은 아나운서의 발언이 이어진다. 김정은이 “만약 적들이 위성을 요격한다면 적들의 아성까지도 무자비하게 짓뭉개버리겠다는 선군조선의 의지를 온 세계 앞에 선포”하도록 하고 “적들이 덤벼든다면 원쑤들의 함선집단과 요격체계를 가차 없이 짓뭉개버리라”는 명령을 하달했다는 것이다. 김정일은 “우리의 인공지구위성 발사가 성과적으로 진행되었다”고 하면서 “이번에 인공지구위성을 요격하겠다는 적들의 책동에 반타격을 가한 것이 우리 김대장”이고, “그가 반타격 사령관으로서 육해공군을 지휘하였다. 만약 적들이 우리의 위성을 요격했더라면 우리 대장의 반타격전에 큰일날 뻔했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정은은 “오늘 각오를 하고 그곳에 갔다가 왔다”, “적들이 요격에로 나오면 진짜 전쟁을 하자고 결심하였댔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러한 발언을 정확한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기록영화에서 이렇게 공개한 이상 북한의 군대와 인민은 모두 그렇게 교육받을 것이고 앞으로도 유사한 사태가 벌어질 경우 유사한 대응방식이 이뤄질 것이라는 점이 주목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기록영화를 통해 ‘광명성 2호’ 발사 당시의 정황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은 내부용일 뿐 아니라 대외용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록영화는 위성관제종합지휘소에서 ‘광명성 2호’ 발사 후에 김정일 위원장이 전병호(당시 군수담당비서)를 비롯한 과학기술자들과 악수를 나누는 장면을 보여주는 한편, 김정은이 전병호, 주규창(당기계공업부장, 실제로는 군수산업담당)과 악수를 한 뒤에 다른 과학기술자들과 악수하는 별도의 영상을 보여주었다. 흥미로운 것은 김정은이 오른 손으로 과학기술자들과 악수하면서도 왼손으로는 전병호와 오랫동안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었다. 북한 군수산업의 산 증인인 전병호(현재는 내각 정치국 국장 겸 당 책임비서)에 대한 ‘감사의 느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아무튼 북한은 이 기록영화를 통해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계승자’가 된 배경을 밝힌 셈이다. 재일 조선총련의 기관지 <조선신보>(1월 9일자)는 “적대국의 정부와 언론들은 그 무슨 《경험부족》이니 《다급한 승계과정》이라느니 뭐니 하면서 악담을 늘어놓고 여론을 오도하려 하고 있으나 이번에 공개된 기록영화는 근거 없이 유포되어온 횡설수설을 일축하였다”, “영화는 세계가 제대로 알지 못하였을 뿐 조선에서 령도의 계승작업은 오래전부터 착실히 추진되어 왔다는 것을 사실자료에 근거하여 웅변으로 말해주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평양시 건설공사장에서의 김정은의 ‘파격 행보’

그리고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1월 11일 군인들이 건설책임을 지고 있는 평양민속공원, 영웅거리고기상점을 비롯한 여러 건설대상들을 시찰했다. <로동신문>의 보도나 <조선중앙TV>보도를 통해 확인되는 것은 평양민속공원 건설 군부대 지휘관에게 잔여공사량, 자재조달대책, 시공관련사항 등을 구체적으로 물어보거나 영웅거리고기상점 건설현장에서 구매자의 편리보장을 강조하는 등 실무적인 자세를 보였다는 점이다. 특히 이 시찰(<조선중앙TV> 보도에선 ‘현지지도’ 표현도 한번 등장)은 고위간부들을 대동하지 않았고 한 사람의 보좌역만 수행하게 한 단출한 ‘파격 행보’여서 주목된다. 105땅크사단 시찰 시에 언급한 바 있는 사전통고 없는 현장방문이 시작된 것으로 볼 수도 있어서다. 젊은 리더십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군부대든 산업현장이든 현지 지휘관과 간부들이 상당한 긴장 속에서 업무를 수행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최영림 내각 총리의 경제현장 방문 재개

끝으로 북한이 ‘조기 안정화’를 이루고 있음은 최영림 내각 총리가 올해 들어 경제현장 방문을 재개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1월 6일 평안북도 동림광산기계공장과 동림전기공장를 방문해 현지의 실태를 요해한데 이어 평양 제1백화점 상품전시회장을 찾아 경공업제품들의 생산보장을 위한 조직사업을 진행했다(<조선중앙통신> 1월 7일 보도). 1월 11일에는 덕천지구탄광연합기업소의 제남탄광을 방문해 생산실태를 파악했다. 제남탄광은 2010년에 2단계 컨베이어 벨트 건설을 마무리하여 석탄생산을 연간 수십만t 추가생산하게 된 대표적인 탄광인데, 최 총리는 광부들을 격려하고 관계부문 실무협의회를 열어 석탄 증산방안 등을 논의했다(<조선중앙통신> 1월 12일 보도).

그리고 최영림 총리는 1월 13일에 평안남도 안주시 소재의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를 방문해 생산실태를 요해했다. 최 총리는 압축기 직장과 석유화학공정 등 생산운영 실태를 돌아보고 관계부문 일군들과 실무협의회를 갖고 비료증산 방안을 논의했다(<조선중앙통신> 1월 14일 보도). 이러한 최영림 총리의 일상적인 경제현장 방문(최 총리의 지난해 9월 1일 이후부터 김정일 위원장 서거 전까지의 경제현장 방문에 대해서는 <표3> 참조)의 재개는 경제부문의 업무가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은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1월 5일 정령을 통해 “2월 1일부터 조국과 인민 앞에 죄를 짓고 유죄판결을 받은 자들에게 대사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는 사실이다. 이 사면조치는 김일성 주석 100회 생일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70회 생일을 기념하는 조치이기도 하지만 김정은 영도체제의 출범에 조음한 민심용이라는 측면도 생각해볼 수 있다. 정령은 “내각과 해당기관들은 대사로 석방된 사람들이 안착되어 일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실무대책을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당국은 이로써 김일성-김정일 시대에 강조해온 ‘인덕정치’ ‘광폭정치’의 계승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할 것이다. 태양절(4월 15일, 김일성 생일)과 광명성절(2월 16일, 김정일 생일) 기간에 강성국가 진입의 축하 분위기를 조성하는 가운데 김정은 최고사령관을 ‘일심단결의 유일중심’(<로동신문> 1월 9일자 사설)으로 삼아 수령-당-군대-인민이 일체가 되기 위해 사면조치를 대대적으로 취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거 이후 1개월 간 김정은 영도체제는 계승을 강조하는 가운데 ‘조기 안정화’에 주력했고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국내외의 많은 전문가들이 단기안정화를 인정하고 있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김정은 영도체제가 장기적으로는 불안정해질 것’이라는 식의 막연한 전망을 내놓고 있는데 구체적인 분석에 기초한 것은 아니어서 참고할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대북정책과 접근자세는 김정일 영도체제의 ‘조기 안정화’라는 현재의 사실에 근거해야 할 것이다.

<표1> 국가장의위원회 명부 (2011. 12.19 <조선중앙통신> 보도) 

순번

성명

                        직         책

출생

001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당 중앙위 위원, 인민군 대장

1982

002

김영남

당 정치국 상무위원, 당 중앙위 위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1928

003

최영림

당 정치국 상무위원, 당 중앙위 위원, 내각 총리

1930

004

리영호

당 정치국 상무위원,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군 총참모장, 군 차수

1942

005

김영춘

당 정치국 위원,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군사위 위원,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인민무력부장, 군 차수

1936

006

전병호

당 정치국 위원, 당 중앙위 위원, 국방위원회 위원,

내각 정치국 국장 겸 당 책임비서

1926

007

김국태

당 정치국 위원,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위 검열위원장

1924

008

김기남

당 정치국 위원,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위 비서1), 당 선전선동부 부장,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1929

009

최태복

당 정치국 위원,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위 비서2), 최고인민회의 의장

1930

010

양형섭

당 정치국 위원, 당 중앙위 위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조국평화통일위 부위원장

1925

011

강석주

당 정치국 위원, 당 중앙위 위원, 내각 부총리

1939

012

변영립

당 정치국 위원, 당 중앙위 위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서기장

1929

013

리용무

당 정치국 위원, 당 중앙위 위원,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군 차수

1925

014

김경희

당 정치국 위원,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위 부장3), 군 대장

1946

015

김양건

당 정치국 후보위원,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위 비서4),

당 통일전선부 부장,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

1942

016

김영일

당 정치국 후보위원,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위 비서5), 당 국제부 부장

1947

017

박도춘

당 정치국 후보위원,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위 비서6)

1944

018

최룡해

당 정치국 후보위원,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위 비서7),

당 중앙군사위 위원, 군 대장

1950

019

장성택

당 정치국 후보위원,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군사위 위원,

당 중앙위 부장8),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1946

020

주규창

당 정치국 후보위원,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군사위 위원,

당 기계공업부장, 국방위원회 위원

1928

021

김락희

당 정치국 후보위원, 당 중앙위 위원, 내각 부총리

1933

022

태종수

당 정치국 후보위원,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위 비서9), 당 총무부 부장

1936

023

김평해

당 정치국 후보위원,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위 비서10), 당 간부부 부장

1941

024

김정각

당 정치국 후보위원,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군사위 위원,

군 총치국 제1부국장, 국방위원회 위원, 군 대장

1941

025

우동측

당 정치국 후보위원,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군사위 위원,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 국방위원회 위원, 군 대장

1942

026

김창섭

당 정치국 후보위원, 당 중앙위 위원, 국가안전보위부 정치국장

1946

027

문경덕

당 정치국 후보위원,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위 비서11),

평양시 당위원회 책임비서

1957

028

리태남

당 정치국 후보위원, 당 중앙위 위원, 내각 부총리

1938

029

오극렬

당 중앙위 위원,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군 대장

1931

030

김철만

당 중앙위 위원

1918

031

리을설

당 중앙위 위원, 군 원수

1921

032

전하철

당 중앙위 위원, 내각 부총리

1928

033

강능수

당 중앙위 위원, 내각 부총리

1930

034

로두철

당 중앙위 위원, 내각 부총리 겸 국가계획위원장

1944

035

조병주

당 중앙위 위원, 내각 부총리 겸 기계공업상

1942

036

한광복

당 중앙위 위원, 내각 부총리 겸 전자공업상

1946

037

백세봉

당 중앙위 위원, 제2경제위원회 위원장, 국방위원회 위원

 

038

리영수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위 부장12)

1946

039

최희정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위 부장13)

1946

040

오일정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위 부장14), 군 중장

1954

041

김정임

당 중앙위 위원, 당 력사연구소 소장

 

042

채희정

당 중앙위 위원, 당 문서정리실 실장

1924

043

김기룡

당 중앙위 위원, 로동신문사 책임주필

1940

044

장병규

당 중앙위 위원, 최고검찰소 소장

 

045

김병률

당 중앙위 위원, 최고재판소 소장

1930

046

홍인범

당 중앙위 위원, 평안남도 당위원회 책임비서

 

047

리만건

당 중앙위 위원, 평안북도 당위원회 책임비서

 

048

주영식

당 중앙위 위원, 자강도 당위원회 책임비서

1942

049

곽범기

당 중앙위 위원, 함경남도 당위원회 책임비서

1939

050

오수용

당 중앙위 위원, 함경북도 당위원회 책임비서

1944

051

로배권

당 중앙위 위원, 황해남도 당위원회 책임비서

 

052

박태덕

당 중앙위 위원, 황해북도 당위원회 책임비서

 

053

김히택

당 중앙위 위원, 량강도 당위원회 책임비서

1935

054

강양모

당 중앙위 위원, 남포시 당위원회 책임비서

 

055

림경만

당 중앙위 위원, 나선시 당위원회 책임비서

1946

056

김경옥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군사위 위원, 당 중앙위 제1부부장, 군 대장

 

057

김명국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군사위 위원, 군 총참모부 작전국장, 군 대장

1940

058

김원홍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군사위 위원, 군 보위사령관15), 군 대장

1945

059

현철해

당 중앙위 위원, 국방위원회 국장16), 군 대장

1934

060

한동근

당 중앙위 위원, 군 총정치국 부국장17), 군 상장

1933

061

조경철

당 중앙위 위원, 군 중장

 

062

박재경

당 중앙위 위원, 인민무력부 부부장, 군 대장

1933

063

변인선

당 중앙위 위원, 인민무력부 부부장, 군 상장

 

064

윤정린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군사위 위원, 호위사령관, 군 대장

 

065

정명도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군사위 위원, 군 해군사령관, 군 대장

 

066

리병철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군사위 위원, 군 공군사령관, 군 대장

 

067

최상려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군사위 위원, 군 상장

 

068

김영철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군사위 위원, 군 정찰총국장, 군 상장

 

069

강표영

당 중앙위 위원, 군 중장

 

070

김형룡

당 중앙위 위원, 군 상장

 

071

리용환

당 중앙위 위원, 군 상장

 

072

김춘삼

당 중앙위 위원, 군 상장

 

073

최경성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군사위 위원, 군 상장

 

074

리명수

당 중앙위 위원, 국방위원회 행정국장18), 군 대장

1937

075

전희정

당 중앙위 위원, 국방위원회 외사국장

1930

076

리영길

당 중앙위 위원, 군 중장

 

077

현영철

당 중앙위 위원, 군 대장

 

078

최부일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군사위 위원, 군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군 대장

 

079

양동훈

당 중앙위 위원, 군 소장

 

080

리봉죽

당 중앙위 위원, 군 상장

 

081

김송철

당 중앙위 위원, 군 소장

 

082

박광철

당 중앙위 위원, 군 중장

 

083

리병삼

당 중앙위 위원, 인민내무군 정치국장, 군 상장

 

084

전창복

당 중앙위 위원, 군 상장

 

085

오금철

당 중앙위 위원, 군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군 상장

 

086

김인식

당 중앙위 위원

 

087

김성덕

당 중앙위 위원

 

088

려춘석

당 중앙위 위원,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총장, 군 대장

 

089

박승원

당 중앙위 위원, 군 상장 (전 군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1946

090

리용철

당 중앙위 위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중앙위원회 1비서

 

091

박의춘

당 중앙위 위원, 내각 외무상

1932

092

김형식

당 중앙위 위원, 내각 석탄공업상

 

093

김태봉

당 중앙위 위원, 내각 금속공업상

 

094

전길수

당 중앙위 위원, 내각 철도상

 

095

리무영

당 중앙위 위원, 내각 화학공업상

1948

096

안정수

당 중앙위 위원, 내각 경공업상

1951

097

리룡남

당 중앙위 위원, 내각 무역상

 

098

류영섭

당 중앙위 위원, 내각 체신상

 

099

박명철

당 중앙위 위원, 내각 체육상

1941

100

김용진

당 중앙위 위원, 내각 교육위원장

1953

101

장  철

당 중앙위 위원, 내각 국가과학원장

1955

102

성자립

당 중앙위 위원, 내각 교육위원회 고등교육상,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1948

103

김정숙

당 중앙위 위원, 조선대외문화련락위원회 위원장

1930

104

강동윤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위 부부장, 군 상장

 

105

김병호

당 중앙위 위원, 군 소장

 

106

차승수

당 중앙위 위원, 조선중앙방송위원회 위원장

1940

107

량만길

당 중앙위 위원, 평양시 인민위원회 위원장

1941

108

윤동현

당 중앙위 위원

 

109

고병현

당 중앙위 위원

 

110

리봉덕

당 중앙위 위원

 

111

박종근

당 중앙위 위원, 락원기계련합기업소 지배인

 

112

최영덕

당 중앙위 위원, 평안북도간석지건설련합기업소 지배인

 

113

정인국

당 중앙위 위원

 

114

전룡국

당 중앙위 위원, 성진제강련합기업소 당책임비서

 

115

리형근

당 중앙위 위원

 

116

황순희

당 중앙위 후보위원, 조선혁명박물관 관장

1919

117

백계룡

당 중앙위 후보위원, 강원도 당위원회 책임비서

1945

118

김동일

당 중앙위 후보위원

 

119

김동이

당 중앙위 후보위원

 

120

리재일

당 중앙위 후보위원,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1935

121

박봉주

당 중앙위 후보위원, 당 중앙위 제1부부장19)

1940

122

정명학

당 중앙위 후보위원, 당 검열위원회 제1부위원장

 

123

강관일

당 중앙위 후보위원

 

124

황병서

당 중앙위 후보위원,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 군 중장

1949

125

권혁봉

당 중앙위 후보위원,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

 

126

홍승무

당 중앙위 후보위원

 

127

김우호

당 중앙위 후보위원, 인민무력부 부부장, 군 소장

 

128

한창순

당 중앙위 후보위원, 군 상장

 

129

리춘일

당 중앙위 후보위원, 군 소장

 

130

리태섭

당 중앙위 후보위원

 

131

조성환

당 중앙위 후보위원, 군 소장

 

132

동영일

당 중앙위 후보위원

 

133

리창한

당 중앙위 후보위원, 군 중장

 

134

고수일

당 중앙위 후보위원, 군 상장

 

135

리국준

당 중앙위 후보위원, 군 중장

 

136

신승훈

당 중앙위 후보위원, 군 소장

 

137

리태철

당 중앙위 후보위원, 군 상장

 

138

양인국

당 중앙위 후보위원, 수도건설총국 총국장, 군 소장

 

139

리히수

당 중앙위 후보위원

 

140

리  철

당 중앙위 후보위원, 최고검찰소 부소장

 

141

현상주

당 중앙위 후보위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

조선직업총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142

리명길

당 중앙위 후보위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

조선농업근로자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143

로성실

당 중앙위 후보위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

조선민주여성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144

동정호

당 중앙위 후보위원, 내각 건설건재공업상

 

145

강민철

당 중앙위 후보위원, 내각 채취공업상

1948

146

김희영

당 중앙위 후보위원, 내각 원유공업상

 

147

조영철

당 중앙위 후보위원, 내각 식료일용공업상

 

148

황학원

당 중앙위 후보위원, 내각 도시경영상

 

149

안동춘

당 중앙위 후보위원, 내각 문화상

 

150

백룡천

당 중앙위 후보위원, 내각 사무국 부장

 

151

홍광순

당 중앙위 후보위원, 국가영화위원회 위원장

 

152

리수용

당 중앙위 후보위원, 조선합영투자위원회 위원장

1935

153

김영호

당 중앙위 후보위원, 내각 사무국 국장

1952

154

방리순

당 중앙위 후보위원

 

155

최춘식

당 중앙위 후보위원

 

156

리제선

당 중앙위 후보위원, 원자력총국 총국장

1938

157

리상근

당 중앙위 후보위원, 원자력총국 방사화학연구소 소장

 

158

리홍섭

당 중앙위 후보위원

 

159

차용명

당 중앙위 후보위원, 김일성고급당학교 교장

 

160

강관주

당 중앙위 후보위원, 내각 225부 부장,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1930

161

태형철

당 중앙위 후보위원, 사회과학원 원장,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

1953

162

김병훈

당 중앙위 후보위원,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위원장

1929

163

김계관

당 중앙위 후보위원, 내각 외무성 제1부상

1943

164

한창남

당 중앙위 후보위원, 내각 철도성 정치국장

 

165

김창명

당 중앙위 후보위원

 

166

전창림

당 중앙위 후보위원

 

167

오철산

당 중앙위 후보위원, 군 상장20)

 

168

손청남

당 중앙위 후보위원

 

169

정운학

당 중앙위 후보위원

 

170

차경일

당 중앙위 후보위원, 김일성정치대학 학장, 군 중장

 

171

강기섭

당 중앙위 후보위원, 민용항공총국 총국장

 

172

최대일

당 중앙위 후보위원, 군 중장

 

173

최영도

당 중앙위 후보위원

 

174

리용주

당 중앙위 후보위원

 

175

전광록

당 중앙위 후보위원, 군 중장

 

176

리찬화

당 중앙위 후보위원

 

177

서동명

당 중앙위 후보위원, 대외보험총국 총국장, 조선민족보험총회사 총사장

 

178

전성웅

당 중앙위 후보위원

 

179

지재룡

당 중앙위 후보위원, 중국주재 대사

1942

180

김영재

당 중앙위 후보위원, 러시아주재 대사

1952

181

리용호

당 중앙위 후보위원, 내각 외무성 부상

1956

182

홍서헌

당 중앙위 후보위원, 김책공업종합대학 총장

1945

183

김동일

당 중앙위 후보위원, 량강도 대홍단군 당위원회 책임비서

 

184

김동은

당 중앙위 후보위원

 

185

김봉룡

당 중앙위 후보위원

 

186

조재영

당 중앙위 후보위원, 희천공작기계종합공장 기사장

 

187

최찬건

당 중앙위 후보위원

 

188

렴인윤

당 중앙위 후보위원, 3월5일청년광산 지배인

 

189

김천호

당 중앙위 후보위원

 

190

장호찬

당 중앙위 후보위원

 

191

송광철

당 중앙위 후보위원, 북중기계련합기업소 지배인

 

192

리기수

당 중앙위 후보위원, 9월제철종합기업소 지배인

 

193

리종식

당 중앙위 후보위원, 김책공군대학 학장, 군 중장

 

194

최  현

당 중앙위 후보위원, 룡성기계련합기업소 지배인

 

195

장명학

당 중앙위 후보위원, 2.8비날론련합기업소 지배인

 

196

강형봉

당 중앙위 후보위원, 내각 석탄공업성부상,안주지구탄광련합기업소 지배인

 

197

김충걸

당 중앙위 후보위원

 

198

김용광

당 중앙위 후보위원, 내각 금속공업성 부상/ 무산광산련합기업소 지배인

 

199

최관준

당 중앙위 후보위원

 

200

장영걸

당 중앙위 후보위원

 

201

김명식

당 중앙위 후보위원. 흥남제련소 지배인

 

202

허성길

당 중앙위 후보위원, 상원세멘트련합기업소 지배인

 

203

노광철

당 중앙위 후보위원

 

204

정봉근

당 중앙위 후보위원

 

205

박창범

당 중앙위 후보위원, 평양화력발전련합기업소 당책임비서

 

206

최봉호

당 중앙위 후보위원, 북창화력발전련합기업소 당책임비서

 

207

정몽필

당 중앙위 후보위원, 순천지구청년탄광련합기업소 당책임비서

 

208

전경선

당 중앙위 후보위원,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 당책임비서

 

209

리성권

당 중앙위 후보위원,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 당책임비서

 

210

최  용

당 중앙위 후보위원, 대안중기계련합기업소 당책임비서

 

211

김태문

당 중앙위 후보위원, 흥남비료련합기업소 당책임비서

 

212

김영숙

당 중앙위 후보위원, 내각 농업성 부상

 

213

차진순

당 중앙위 후보위원, 9월27일닭공장 지배인

 

214

리민철

당 중앙위 후보위원, 원산종합농업대학 총장

 

215

리일남

당 중앙위 후보위원, 윤이상음악연구소 소장, 평양음악대학 학장

 

216

김창수

당 중앙검사위원회 위원장, 내각 중앙통계국 국장

 

217

박명순

당 중앙검사위원회 부위원장, 만경대스케이트신발공장 초급당비서

 

218

최배진

당 중앙검사위원회 위원, 내각 국가계획위원회 부위원장

 

219

김  철

당 중앙검사위원회 위원, 내각 철도성 부상

 

220

심철호

당 중앙검사위원회 위원, 내각 체신성 부상

 

221

오룡일

당 중앙검사위원회 위원

 

222

계영삼

당 중앙검사위원회 위원, 농업과학원 원장

 

223

류현식

당 중앙검사위원회 위원, 함경남도 인민위원회 위원장

 

224

고명희

당 중앙검사위원회 위원, 평안남도 인민위원회 위원장

 

225

방용욱

당 중앙검사위원회 위원

 

226

장정주

당 중앙검사위원회 위원, 강동수력건설련합기업소 당책임비서

 

227

허광욱

당 중앙검사위원회 위원, 풍서임산사업소 초급당비서

 

228

지동식

당 중앙검사위원회 위원, 금성뜨락또르공장 지배인

 

229

정봉석

당 중앙검사위원회 위원, 재령광산 초급당비서

 

230

최권수

당 중앙검사위원회 위원, 김책대흥수산기업소 지배인

 

231

김영대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민족화해협의회 회장

1937

232

류미영

조선천도교청우당 위원장,

조선천도교 중앙지도위원회 위원장, 단군민족통일협의회 회장

1921

※ 직책 및 출생년도의 출처: 통일부가 발간한 『2011 북한의 주요 인물』, 『2011 북한기관․단체별
인명집』, 『2011 북한기관․단체별 인명집 색인』(통일부 자료에 오류가 있는 경우나 직책추정이
가능한 경우는 각주로 처리)
<각주>
1) 김기남 당 선전담당비서
2) 최태복 당 교육과학담당비서
3)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
4) 김양건 당 대남담당비서
5) 김영일 당 국제담당비서
6) 박도춘 당 경제담당비서
7) 최룡해 당 근로단체담당비서
8) 장성택 당 행정부장
9) 태종수 당 총무담당비서
10) 김평해 당 간부담당비서
11) 문경덕 당 지방담당비서
12) 리영수 당 근로단체부장
13) 최희정 당 과학교육부장
14) 오일정 당 민방위부장
15) 김원홍 군 총정치국 조직담당부국장
16) 현철해 총정치국 상무부국장
17) 한동근 총정치국 선전담당부국장
18) 리명수 인민보안부장
19) 박봉주 당 계획재정부 제1부부장
20) 오철산 해군사령부 정치위원

<표2> 정치국 성원 및 군 수뇌부 조의행사 등 명부 순번 

순번

12.19

12.20

12.23

12.24

12.26

1.1참배

1.1

105땅크

1.1신년음악회

1.15

종합공연

01

김정은

김정은

김정은

김정은

김정은

김정은

김정은

김정은

김정은

02

김영남

김영남

김영남

리영호

김영남

김영남

리영호

김영남

리영호

03

최영림

최영림

최영림

김영춘

최영림

최영림

장성택

최영림

김영춘

04

리영호

리영호

리영호

리용무

리영호

리영호

김정각

리영호

장성택

05

김영춘

김경희

김경희

오극렬

김경희

김경희

황병서

김영춘

김정각

06

전병호

김영춘

김영춘

장성택

김영춘

김영춘

박재경

김국태

김명국

07

김국태

전병호

전병호

당중앙

군사위

성원

전병호

김기남

현철해

김기남

박재경

08

김기남

김국태

김국태

김국태

최태복

 

최태복

 

09

최태복

김기남

김기남

김기남

양형섭

양형섭

10

양형섭

최태복

최태복

최태복

강석주

리용무

11

강석주

양형섭

리용무

국방위

성원

양형섭

장성택

오극렬

12

변영립

리용무

오극렬

리용무

김정각

강석주

13

리용무

오극렬

강석주

오극렬

김양건

변영립

14

김경희

강석주

변영립

강석주

김영일

장성택

15

김양건

변영립

장성택

인민군

주요

지휘성원

변영립

박도춘

김정각

16

김영일

장성택

김정각

장성택

최룡해

김양건

17

박도춘

김정각

김양건

김정각

태종수

김영일

18

최룡해

김양건

김영일

김양건

김평해

박도춘

19

장성택

김영일

박도춘

김영일

문경덕

최룡해

20

주규창

박도춘

최룡해

최고

사령부

작전

지휘성원

박도춘

주규창

김락희

21

김락희

최룡해

김락희

최룡해

우동측

태종수

22

태종수

김락희

태종수

김락희

김창섭

김평해

23

김평해

태종수

김평해

태종수

당중앙

군사위

성원

문경덕

24

김정각

김평해

문경덕

김평해

주규창

25

우동측

문경덕

주규창

대연합

부대

지휘성원

문경덕

우동측

26

김창섭

주규창

우동측

주규창

국방위

성원

김창섭

27

문경덕

우동측

김창섭

우동측

 

28

리태남

김창섭

 

김창섭

29

오극렬

 

 

최고사

 

<표3> 최영림 내각총리의 경제현장 방문 (2010.9.1-12.17) 

방문일

                         경제단위

   보도일

9.1~2

희천발전소 건설정형 현지요해

9.3   중통

9.11

금성식료공장과 평양 8월풀가공공장 현지요해 및 협의회 진행

9.13  중통

9.20

대동강텔레비전수상기공장 현지시찰

9.20  중통

10.5

평양남새과학연구소와 평양화초연구소 온실건설장 현지요해

10.6  중통

 

내각전원회의 확대회의 참석

10.15 중통

10.16

현대화된 두단오리공장 참관

10.16 중통

10.21

새로 건설된 대동강돼지공장․대동강자라공장․대동강그물공장 참관

10.21 중통

10.25

농업과학원 사업 현지요해

10.25 중통

10.28~29

황남 협동농장들 (재령군 장국협동농장, 신원군 무학협동농장 등)

      영농사업 현지요해

10.30 중통

11.9

함남 함흥시의 여러 부문사업 (2.8비날론연합기업소․흥남비료연합

      기업소․룡성기계연합기업소 등) 현지 요해

11.12 중통

11.10~11

단천지구광업총국 사업 (대흥청년영웅광산, 룡양광산,

      단천마그네샤공장, 단천제련소 등) 현지요해

11.13 중통

11.12~13

청진시내 기업소들 (김책제철연합기업소, 나남탄광기계연합기업소,

      청진제강소, 경성애자공장, 염분진호텔 건설장) 생산실태와

      기술개건정형 현지요해

11.14 중통

11.13~14

무산광산연합기업소 생산실태 현지요해 및 함경남도 단천항

      건설 현장에서 정형요해

11.16 중통

11.17

함남 흥남가스화 1계열공사, 2.8비날론연합기업소 수평방사

      섬유 생산공정 조업식 참석

11.17 중통

11.16

평양지하상점 가을철상품전시회장 참관

11.17 중통

11.23

순천시멘트연합기업소․ 안주지구탄광연합기업소 현지요해

11.24 중통

11.20

대안친선유리공장과 남포유리그릇분공장 현지요해

11.21 중통

11.27

국가과학원 현지요해

11.28 중통

12.6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 및 개건된 낙랑감자가공공장 생산공정․

      감자저장들 현지요해

12.6  중통

12.8

황해제철연합기업소 현지요해

12.8  중통

12.13

바닷물 공급소와 곱등어(돌고래)관 건설장 현지 요해

12.13 중통

12.17

평안남도 숙천군 여러 곳(숙천혁명사적관, 관개관리소,

       농기계작업소 등) 참관

12.17 중통

 ※ 중통은 <조선중앙통신>의 줄인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