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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팀, 미군 돕기 바빠 천안함은 뒷전이었을 것"
‘4차 천안함 재판’ 마친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
2011년 11월 15일 (화) 21:39:26 김치관 기자 ckkim@tongilnews.com
   
▲ 4차 공판을 마친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는 15일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천안함 초기 구조작업과 미군과의 연관성을 제기해 주목된다. [사진출처 - 미7함대 홈페이지]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의해 폭파됐다는 정부의 공식 발표에도 불구하고 ‘좌초설’ 소신을 굽히지 않아 재판을 받고 있는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가 14일 4차 공판을 마친 뒤 <통일뉴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신상철 대표는 김진황 해난구조대(SSU) 대장이 증인으로 출석해 천안함 사건 발생 다음 날인 지난해 3월 27일 오전 9시경 백령도 용트림 바위 옆 전망대에서 천안함 함수를 목격한 것을 증언했다고 전했다.

같은 시간대에 같은 장소에 도착했던 최순영 폭발물처리반(OSD) 구조대장은 지난 8월 22일 1차 공판에서 증인으로 나와 함수를 보지 못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그러나 김진황 대장은 오전 9시경 천안함 함수를 목격하고도 함수가 완전히 가라앉은 오후 1시 37분 이전까지, 즉 4시간 37분 동안 상부에 보고하는 것 외에 직접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함수가 가라앉은 뒤 기름막이 형성된 주변에 부이를 설치했다고 증언했다.

신상철 대표는 “긴진황 구조대장은 함수를 보았다고 증언함으로써 해군 측의 천안함 함수를 보았다는 공식 확인이 이루어진 셈”이라며 “김진황 구조대장은 상부에는 보고만 하고 그 이후 상부에서 어떠한 조치나 지시사항이 없었다고 했다”고 전했다. 또한 “탐색과 구조 의지를 갖고 있었다고 누가 생각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같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신 대표는 “사고후 천안함 함수가 무려 16시간 22분이나 떠있는데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아 결국 조용히 사라졌는데 그러한 사실을 국민들이 아무도 몰랐다는 것 자체가 사고 당시의 해난구조업무가 천안함에 포커스가 맞춰지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며 사건 초기 수색 및 탐색 임무가 천안함이 아닌 다른 구난작업에 투입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신 대표는 “그 당시 미 제7함대의 구조와 관련된 모든 병력이 백령도에 집결돼 있었고, 미군의 헬기들이 무수히 떴다 앉으며 제3의 위치에서 파편들을 걷어 올린 것은 이미 언론 보도를 통해 많이 알려졌다”며 “미군은 그 위치에서 어떤 비밀스럽고 긴박한 작업이 있었기에 그렇게 바삐 움직였는지 밝혀져야 하고, 사고 초기 한국의 구조팀 역시 그들과 어떤 작업을 했는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4월 12일 대형 크레인으로 천안함 함미를 인양해 직접 바지선으로 끌어올리지 않고 4.6㎞나 이동해 용트림 바위 부근, 이른바 ‘제3부표’가 있는 부근에 함미를 내려놓은 뒤 4월 15일에야 다시 인양해 바지선에 싣고 16일 평택으로 이동한 사실에 대해서도 미군 관련 의혹을 제기했다.

신 대표는 “미국의 경우 제3의 부표 위치에서 모종의 수색과 부유물을 건지는 작업들이 4월 13일로 완료된다. 4월 14일 미국은 현장을 떠났다”며 “천안함 함미를 크레인에 걸고 이동하게 된 배경과 미군의 작업은 분명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김진황 구조대장은 탑재 과정에서 스크루 프로펠러가 부러졌다고 주장한다”며 “천안함을 바지선에 탑재하려고 하니 스크루 프로펠러의 돌출 부분이 바지선에 닿자 야간작업을 통해 스크루 프로펠러의 하단을 프라즈마 용접기를 이용 잘라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천안함 프로펠러를 보면 반듯하게 잘려나간 부분이 있고, 또한 스크루 프로펠러는 주물이어서 뜨거운 열이 닿았을 때 변색되는데 그 현상까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신 대표는 “(프로펠러가) 부러졌는지 인위적으로 잘라냈는지는 떨어져 나간 조각을 군에서 확보하고 있다고 하니, 과학적으로 조사하면 금방 드러날 일”이라고 말했다.

신 대표는 “재판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것은 어차피 이 재판, 이 싸움은 거대한 국가권력과 벌이는 진실게임인데 메이저 신문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언론들이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새로이 드러나는 사실들에 대해서도 침묵하고 심지어 왜곡까지 하는 현상을 보면서 정말 우리나라에서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은 참으로 고난하고 힘든 과정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며 ‘바로 선 언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5차 공판은 12월 12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서관 524호에서 열리며 권만식 88수중개발 실무책임자와 이헌규 UDT 동지회 회원, 그리고 황현택 KBS 기자가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다음은 15일 오후 5시경 서울 여의도 한 사무실에서 진행한 신상철 대표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1.2차 재판, 천안함 함수는 16시간 22분 동안 떠있었다

   
▲ 신상철 대표는 15일 여의도 한 사무실에서 가진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14일 열린 4차 공판 결과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통일뉴스 : 어제 천암함 재판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 신상철 대표 : 어제 제 4차 공판이 있었다. 김진황 해군 55전대 5전단 소속 SSU 해난구조대장, 현 대령이자 당시 중령이 증인으로 신청됐고, 또 한 명은 정성철 88수중개발 대표가 증인이었다. 그러나 정성철 대표가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해 김진황 해난구조대장만 증인석에 섰다.

□ 재판 내용은 어떠했나?

■ 먼저 1차 재판부터 순서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

1차 재판은 8월 22일 열려 제가 30분 가량의 프리젠테이션으로 모두진술을 했다. 소송의 성격, 의문점 제기 배경, 좌초로 분석하게 된 배경, 폭발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 등등,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주장을 모두진술에서 다 펼쳤다.

이어서 해경 501호 유종철 부함장에 대한 증인신문 있었다. 거기서 드러난 중요한 사실은 첫째, 사고원인에 대해 ‘좌초’라는 전문을 받았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천안함 함수가 무려 16시간 이상 가라앉지 않고 떠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 천안함 함수(가운데)는 사건 다음날 아침에도 사진에 선명하게 잡혔다. 3월 27일 오전 8시 37분에 백령도 면사무소 직원이 촬영한 사진. [사진제공 - 최길호]
또한 소령인 최영순 구조대장에 대한 증인심문이 있었는데, 최 구조대장은 사고 다음날까지 가라앉지 않고 있던 함수를 못 봤다고 했다. 전진기지를 설치한 장천포구에서 훤히 보일 뿐만 아니라 민간인들도 사진을 찍을 정도로 수면 위로 드러나 있었는데도 보지 못했다 했다.

2차 재판은 9월 19일에 열렸고, 심승섭 해군작전사령부 작전처장이 증인으로 나왔다. 해군작전사령부에서 천안함 함수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었고, 그 내용을 백령도 해난구조단에 통보해줬다고 하는데, 이것은 매우 중요한 증언이다. 그리고 3월 27일 오후 1시 37분 함수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했다고 했다.

1,2차 재판 결과를 취합해보면 천안함 함수는 무려 16시간 22분 동안 가라앉지 않고 떠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그럼에도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떠한 논리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구조대는 해작사로부터 통보를 받은 것이 없다고 했다.

3차 재판은 10월 17일에 열렸지만 정성철 88수중개발 대표와 원태재 국방부 대변인이 증인으로 나올 예정이었다. 그러나 정 대표는 건강상 이유로, 원 대변인은 검찰측에서 증인을 교체하겠다고 요청해 재판이 진행되지 못했다.

검찰측 증인인 원태재 대변인의 경우 변호인측에서 이 사건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증인이므로 반드시 증인으로 소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변호인측 요청에 의한 증인으로 차후 소환하기로 재판부와 합의했다.

이번 4차 재판에 참석하지 않은 정성철 88수중개발 대표는 건강상태가 계속 안 좋다는 점을 재판부에서 인정해서 그 회사 소속 실무책임자가 증인으로 나오기로 해 다음 기일에 나오기로 했다.

어제 열린 4차 재판에는 김진황 해난구조대장만 증인으로 출석했다.

김진황 구조대장, 천안함 함수 보았다고 확인

□ 이번 4차 공판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무엇이었나?

■ 최영순 구조대장의 경우 김진황 구조대장과 비슷한 시간대에 현장에 도착해 같은 지역인 장촌포구에 전진기지를 같이 구축했는데, 수면위로 드러난 천안함 함수를 본 적이 없다고 진술한 것에 반해, 긴진황 구조대장은 함수를 보았다고 증언함으로써 해군 측의 천안함 함수를 보았다는 공식 확인이 이루어진 셈이다.

김진황 구조대장은 아침 일찍 백령도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용트림 바위 옆 전망대로 가서 바다쪽을 보니 천안함 함수가 수면위로 드러난 것이 보였다고 했다. 아침 9시경이다.

문제는 천안함 함수를 봤으면 선박을 확보하든, 구조하든, 부이를 설치하든 뭔가 조치를 취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진황 구조대장은 상부에는 보고만 하고 그 이후 상부에서 어떠한 조치나 지시사항이 없었다고 했다.

□ 그렇다면 긴급한 상황에서 김진황 구조대장은 무엇을 했다고 답변했나?

■ 뭐했냐고 질문하니까 장촌포구에 텐트를 설치하고 장비를 정비하고 대원들에게 잠수복을 갈아입혀 바다로 나가니 이미 함수가 가라앉고 없더라는 것이다.

천안함 함수가 사라진 것은 공식 발표에 따르면 오후 1시 37분인데, 그렇다면 아침 9시에 발견하고 적어도 오후 1시 37분 이후에야 바다로 나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탐색과 구조 의지를 갖고 있었다고 누가 생각할 수 있겠느냐?

□ 재판정에서도 재판장을 비롯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곤란한 답변 아닌가?

■ 일단 그러한 질문들이 계속 이어졌고, 현장에서 부이를 설치했는데, 어떤 위치를 보고 부이를 설치했느냐고 질문하니까 김진황 구조대장은 위치를 통보받지도 않았을 뿐더러 위치를 알았다고 해도 좌표를 찍을 만한 어떤 장비가 없었다고 답했다.

저는 2차 재판에서 심승섭 해작사 작전처장이 실시간으로 위치를 통보해줬다기에 통보해준 위치에 따라 현장에서 부이를 설치한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 김진황 구조대장은 부이 설치를 유막을 보고 설치했다고 증언했다. [사진출처 - 국방부백서]
부이를 무엇을 기준으로 설치했느냐는 질문에는 바다에서 기름 유막이 형성된 것을 보고 선박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부하 대원들의 보고가 있어서 그 위치에 부이를 설치해 수색해보라고 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수색은 좌표도 전달되지 않았고, GPS 장비도 없어서 좌표를 받아도 정확히 찾아갈 수단도 없었다. 100여 명 이상의 수색 탐색대원들이 백령도 인근에서 수색과 탐색작업 한 것이 얼마나 실효적이었는지 굉장히 회의스럽다.

더구나 김진황 구조대장은 SSU 소속이고 최영순 구조대장은 OED 소속이다. OED는 폭발물 처리반이다. 그런데 SSU와 OED는 무전기 채널도 달라 서로 교신조차 할 수 없었다는 거다.

개인적으로는 김진황 해난구조대장이 최영순 소령의 고교 선배다. 친분이 있는 사이인데도 수색 탐색이라는 중대한 임무에 두 기관이 서로 무전기 채널도 다를 정도로 교신과 협조 체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최선을 다해 탐색했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사고후 천안함 함수가 무려 16시간 22분이나 떠있는데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아 결국 조용히 사라졌는데 그러한 사실을 국민들이 아무도 몰랐다는 것 자체가 사고 당시의 해난구조업무가 천안함에 포커스가 맞춰지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초기 한국 구조팀, 미군 돕기 위해 바빴던 것으로 추론”

□ 해난구조업무가 천안함에 포커스가 맞춰지지 않았다면, 어디에 포커스가 맞춰졌다는 것인가?

   
▲ 미군의 헬기들이 파편들을 걷어 올리고 있는 사진(가운데). 미군들은 바다를 향해 경례를 하고 14일 현장을 떠났다(가운데 오른쪽). [사진출처 - 미7함대 홈페이지]
■ 그 당시 미 제7함대의 구조와 관련된 모든 병력이 백령도에 집결돼 있었고, 미군의 헬기들이 무수히 떴다 앉으며 제3의 위치에서 파편들을 걷어 올린 것은 이미 언론 보도를 통해 많이 알려졌다.

미군은 그 위치에서 어떤 비밀스럽고 긴박한 작업이 있었기에 그렇게 바삐 움직였는지 밝혀져야 하고, 사고 초기 한국의 구조팀 역시 그들과 어떤 작업을 했는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어제 김진황 구조대장의 증언에 의해 밝혀진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이 있다. 4월 12일 대형 크레인을 동원해 천안함 함미를 인양한다. 케이블 2가닥을 걸어 인양해서 함미가 수면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그 함미를 바로 바지선에 싣고 이동하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이것을 수심이 얕은 물속으로 끌고 간다.

그런데 당시 88수중개발의 실무를 책임지고 있던 정호연 부사장이 <매일경제신문>에 인터뷰한 내용에 의하면, 케이블 두 가닥이면 충분히 인양이 가능하고 바로 바지선 위에 올려서 이동하면 된다고 했다.

   
▲ 대형 크레인이 함미를 매달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출처 - 국방부백서]
그 정도는 일도 아니라고까지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군에서는 함미를 크레인에 매달고 무려 4.6㎞나 이동해 용트림 바위 부근으로 함미를 끌고 가서 물속에 다시 내려놓았다. 그 위치는 소위 말해서 제3의 부표가 있었다고 하는 위치와 인접한 곳이다. 그 이후 이틀간 작업을 하지 않는다. 4월 15일 결국 함미를 바지선 위에 얹고 4월 16일에야 평택을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미국의 경우 제3의 부표 위치에서 모종의 수색과 부유물을 건지는 작업들이 4월 13일로 완료된다. 4월 14일 미국은 현장을 떠났다. 따라서 천안함 함미를 크레인에 걸고 이동하게 된 배경과 미군의 작업은 분명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고 본다. 이런 부분들이 언젠가는 밝혀질 것으로 본다.

□ 미군 헬기로 뭔가를 이송하는 당시의 사진을 인상 깊게 본 적이 있다.

■ 헬기로 뭔가를 건져내 실어나르는 것은 당시 보도됐던 사안이다. 미군들이 바다를 향해 경례를 하고 떠난 게 14일이므로 충분히 개연성 있는 추론이다.

“천안함 프로펠러, 용접기로 커팅한 것”

□ 이번 4차 재판에서 다른 특기할 만한 내용은 없었나?

■ 또 한 가지 어제 재판에서 논란이 있었던 것은 당시 4월 15일 천안함 함미를 바지선에 내려놓을 때 바지선의 버팀목이 충분한 높이로 준비되지 않아서 천안함 스크루 프로펠러가 바지선 갑판에 닿게 되는 일이 발생했다.

제가 천안함 함미가 허공에 매달려 있을 때와 바지선에 탑재돼 있을 때의 영상을 오버랩시켜 비교 대비해본 결과 만약 천안함 함미를 그대로 바지선에 탑재하면 스크루 프로펠러가 50㎝ 내지는 1m 정도는 갑판을 뚫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바지선 탑재준비에 문제가 있었다.

   
▲ 프로펠러 손상에 대해 신상철 대표는 "프라즈마 용접기로 커팅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그러자 군은 야간에 가림막을 치고 모종의 작업을 했는데, 천안함을 바지선에 탑재하려고 하니 스크루 프로펠러의 돌출 부분이 바지선에 닿자 야간작업을 통해 스크루 프로펠러의 하단을 프라즈마 용접기를 이용 잘라낸 것으로 분석한다. 실제로 천안함 프로펠러를 보면 반듯하게 잘려나간 부분이 있고, 또한 스크루 프로펠러는 주물이어서 뜨거운 열이 닿았을 때 변색되는데 그 현상까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럼에도 김진황 구조대장은 탑재 과정에서 스크루 프로펠러가 부러졌다고 주장한다.

제가 주장하는 것은 만약 탑재 과정에서 프로펠러를 잘라내야 했다면 국민에게 알리고 자르면 되지만 거짓말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부러졌는지 인위적으로 잘라냈는지는 떨어져 나간 조각을 군에서 확보하고 있다고 하니, 과학적으로 조사하면 금방 드러날 일이다.

□ 5차 공판은 언제 어떤 내용으로 열리나?

■ 12월 12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서관 524호에서 3명의 증인의 증언을 듣는다.

권만식 88수중개발 실무책임자와 이헌규 UDT 동지회 회원, 그리고 황현택 KBS 기자다. 권만식 씨는 천안함 함미 인양과정에 대해, 이헌규, 황현택 씨는 제3부표와 관련해 증언할 예정이다.

참고로 이헌규 씨가 물속에 들어갔더니 커다란 물체가 있고, 해치가 있어서 들어가니 5m 정도 소방호수가 얽혀 있었다고 했고, 해치 주변에는 국기 게양대와 같은 것이 설치돼 있었다고 언론에 말한 바 있다. 그러한 구조는 천안함에는 존재하지 않고 잠수함에는 존재한다.

황현택 기자는 그러한 부분을 집중 취재했고 보도했다. 그 때문에 소송까지 당하고 방송윤리위까지 가서 곤욕을 치렀다.

□ 최근 서너 차례의 법원 재판과정을 통해 느끼는 점은?

■ 제가 천안함 사건에 문제를 제기한 이유는 이 사건이 지극히 전문적인 분야이고 특히 해상에서 운항상의 문제, 선박 구조적인 문제, 즉 항해와 조선에 관한 깊은 지식이 요구되는 사건인데, 저는 그 분야 모두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항해를 전공했고 해군에 근무할 때 동급 선박도 타봤고 서해안 경비 업무도 서봤고, 상선에서 항해사 생활을 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소에서 신조선(새 배) 감독도 해봤기 때문에 천안함 사건의 경우는 그 사고의 원인과 그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까지도 충분히 알 수 있었는데 국방부에서 조작과 왜곡하는 것을 보고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지난해 9월 13일 국방부에서 열린 천안함 사건 최종 조사결과 발표 기자회견 모습. 신상철 대표는 언론의 문제점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재판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것은 어차피 이 재판, 이 싸움은 거대한 국가권력과 벌이는 진실게임인데 메이저 신문들을 포함 대부분 언론들이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지 않을 뿐마 아니라 새로이 드러나는 사실들에 대해서도 침묵하고 심지어 왜곡까지 하는 현상을 보면서 정말 우리나라에서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은 참으로 고난하고 힘든 과정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결국 천안함 사건과 같은 이러한 사태가 왜곡되고 조작될 수 있게 한, 그것이 가능하게 한 배경 역시 언론이라고 생각한다. 진실을 가리고 거짓된, 날조된 정보를 퍼뜨림으로 인해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는 역할을 언론들이 자행했던 것이다.

바로 선 언론이 필요하다. 진실을 밝힐 의지를 가진 언론이 필요하다. 사실을 사실대로 전하는 언론이 필요하다. 거짓을 거짓이라고 고발하는 언론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