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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으로 돌아간 '농민값'.."해법은 대북 쌀 지원 재개"
매년 쌀 의무수입물량은 급증, 재고미 쌓여..정부, 대책 마련은 '외면'
2010년 08월 20일 (금) 17:07:29 고성진 기자 kolong81@tongilnews.com

남북관계만 10년 전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다. 쌀 재고량이 넘치면서 올해 시판되는 쌀값은 무려 15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한 가마니에 16만 원 정도 하던 쌀이 최근 충남 당진에서는 9만 7천 원 선까지 떨어졌다. 올해 전북에서도 쌀값이 10만 원대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위두환 사무총장은 20일 국회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쌀 대란, 쌀 전쟁, 쌀값이 20년 전으로 떨어졌다는 말도 모두 맞다"며 "쌀값이 계속 폭락하면서 농민들은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까지 와 있다"고 말했다.

농민들은 쌀값을 '농민 값'이라고 부른다. 지난해부터 농민들은 쌀 재고량이 넘쳐 쌀값 대란이 닥칠 것이라고 우려하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지만, 정부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묵은 쌀을 가축용 사료로 대체하겠다는 방침이 나와, 여론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재고미를 단기간 내에 효과적으로 해결할 방법으로, 농민들과 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 이후 중단됐던 대북 쌀 지원 재개를 꼽고 있지만, 얼어붙은 남북관계로 앞이 보이지 않은 상황이다.

2002년부터 연간 약 40~50만 톤의 대북 쌀 지원이 꾸준히 진행됐지만, 이 정부 들어서는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나마 민간에서 자체적으로 보내는 '통일쌀'의 북송도 가로막혀 각 지역 창고에 고스란히 쌓이고 있다. 농민단체 관계자는 지역 창고에서 쌓인 쌀이 보관이 어려운 데다, 시간이 흐를수록 품질이 떨어지고 있다고 하소연을 한다.

정부, 올해 쌀 재고량 140만 톤 예상
"의무수입물량 급증, 소비 감소 추세로 재고량 많아져"


   
▲ '한반도평화실현을위한통일쌀보내기국민운동본부'는 20일 오전, 국회도서관에서 '얼어붙은 남북관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통일뉴스 고성진 기자]
지난 6월 농림수산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양곡연도(전년도 11월 1일부터 해당연도 10월 31일까지)말 기준으로 올 한 해 전체 쌀 재고량을 140만 톤(2008년 68만 톤, 2009년 100만 톤)으로 전망했다.

쌀 재고량이 증가하는 이유에 대해 정부는 소비가 줄어드는 데 비해 공급이 많다는 시장 논리로, 생산자인 농민과 소비자인 시민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장경호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는 이날 토론회에서 "쌀 공급이 늘어난 부분은 WTO 가입 이후 의무 수입하는 물량이 처음에는 많지 않다가, 2002년도 들어서면서 12만 톤, 올해 같은 경우는 30여만 톤, 2012년의 경우 40만 톤까지 빠른 속도로 늘어나면서 공급이 과잉되는 상황"이라며 "그에 반해 쌀 소비는 전체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재고량이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00년대 초부터 쌀값이 문제 제기되는 과정 속에서 남북관계와 쌀 정책이 연관되면서 선순환구조로 문제가 잘 풀려 갔다. 그러나 MB 정부 이후 당장 한 것이 대북 쌀 지원 중단 조치였고, 이 때문에 창고에서 당장 빠져나가야 할 쌀이 나가지 못하면서 쌀값 하락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1990년 중반 쌀 개방 이후 의무수입물량(MMA)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데 반해, 수요는 감소하는 상황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재고미의 대북 지원을 통해 국내 쌀값 안정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 대규모 대북 지원이 중단되면서 '쌀 대란'은 예상된 현상이라는 지적이다.

"대규모 물량의 시장격리 필요..단기적으로 대북 쌀 지원 재개 효과적"

더욱 우려되는 부분은, 이런 쌀 대란 현상이 내년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다. 과잉 재고 때문에 시장의 격리 없이는 해결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장 교수는 "쌀 대란 해결을 위해 대규모 물량의 시장격리 필요성은 정부도 인정하면서도 대북 쌀 지원, 국내 취약계층 지원, 해외 빈곤층 원조 등의 가능한 조치는 외면하고 있다"며 "단기적으로 볼 때는 대북 쌀 지원 재개가 가장 효과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위두환 사무총장도 "김대중.이명박 정부 때에는 연간 40만 톤의 쌀을 북한에 지원하면서 쌀 문제에 유연하게 대응했다"며 "정부의 책임은 외면하고 모든 책임을 농민 탓, 소비자 탓으로 돌리는 것에 대해서 분통이 터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북 쌀 지원 재개가 쌀 대란의 현 상황에 대한 단기적 해법으로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대북 쌀 지원은 단기적으로 쌀의 과잉재고 부담을 해소하여 쌀값 폭락 사태를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식량자급률 제고, 남북 농업공동체 구축 등을 염두에 두고 정례화 혹은 제도화하여 쌀 정책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의 하나로 포함시켜야 한다"고 장 교수는 강조한다.

"대북 쌀 지원, 막혀 있는 남북관계의 돌파구"
6.15남측위, 특별위원회 결성


   
▲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등은 지난해 10월 국회 인근 산업은행 앞에서 '쌀값 폭락 해결과 대북 쌀 지원 법제화 촉구를 위한 전국여성농민대표자대회'를 열고 삭발식을 단행하며 성난 농심을 쏟아냈다.[통일뉴스 자료사진]
뿐만 아니라, 군사적 충돌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현 남북관계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이승환 6.15남북공동실천 남측위원회 집행위원장은 "통일쌀 사업은 현 시점에서 최고의 통일운동이다. 천안함 사건 이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분단체제라는 것이 떠오른 시점에서 우리 삶과 바로 직결되어 있는 것이 쌀 문제"라며 "재고쌀 해소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 문제를 돌파하지 않으면 남북관계의 미래는 없다"고 주장했다.

6.15남측위는 대북 쌀 지원 재개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해 '재고 쌀 해소 및 대북 쌀 지원 특별위원회'를 결성하기로 했고, 조만간 위원장이 선임될 것이라고 이 집행위원장은 밝혔다.

김이경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사무총장도 "농민들은 굉장히 절박한 것 같다. 이런 힘으로 막혀 있는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정부 정책들을 바꿔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에게 이런 것을 해낼 수 있는 의지들을 결집시킬 수 있는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