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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I냐, 개성공단이냐 ‘갈림길’로
[뉴스 분석] 남북 개성회담 전망
북 “남쪽 PSI참여, 노골적 대결 포고” 경고
정부 강경대응땐 남북관계 파국 치달을 듯
한겨레 이제훈 기자
»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새로 완공된 평안남도 영원발전소를 현지지도하고 있다고 북한 관영 <중앙방송>이 18일 보도했다.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와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 현철해·박재경 조선인민군 대장 등이 수행했다. <조선중앙통신>은 19일 이 사진을 공개하며 촬영 날짜는 밝히지 않았다. 영원발전소는 1996년 공사를 시작해 12년 만에 완공됐고, 발전 용량은 13만5천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악화를 거듭해 온 남북관계가 또다시 중대한 고빗길에 들어서고 있다.

북한이 16일 “개성공단과 관련한 중대한 문제를 통보할 게 있다”며 ‘관리위원회 주요 간부와 책임있는 남쪽 당국자’가 21일 개성으로 오라고 통보했고, 정부는 18일 오전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19일로 예정됐던 대량파괴무기 확산방지구상(PSI·피에스아이) 전면 참여 발표를 21일 개성 접촉 뒤로 미뤘다. 북쪽은 18일 오후 남쪽의 피에스아이 참여는 “노골적인 대결포고 선전포고”라고 거듭 경고했다. 정부는 21일 개성 남북 접촉에 김영탁 통일부 개성공단사업지원단장과 문무홍 개성공단관리위원회 위원장 등 10여명을 보내기로 했다고 19일 오후 발표했다.

21일 개성 접촉에서 북쪽이 통보할 ‘대응 조처’와, 이후 정부의 피에스아이 전면 참여 발표 여부가 앞으로 남북관계를 가를 중대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북쪽이 개성공단 사업과 관련한 남쪽 체류 인력의 대폭 감축 또는 전면적 통행 차단 조처를 취하거나, 남쪽이 피에스아이 참여 발표를 강행할 경우 남북관계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

정부는 21일 개성 접촉을 현 정부 들어 첫 남북 당국간 접촉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통보할 게 있다’는 북쪽 통지문을 당국간 협의를 위한 회담 제안으로 보기는 어렵다. 전직 고위 당국자는 “북쪽은 개성공단의 문을 닫는 최종 책임은 남쪽이 질 수밖에 없도록 압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16일은 정부가 피에스아이 참여 발표 시점을 애초 15일에서 19일로 미룬 하루 뒤다. 북쪽의 개성 접촉 제안이 피에스아이 문제와 직접 관련이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21일 남북 접촉과 남쪽의 피에스아이 참여 발표 문제가 연계될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상황이 흐르고 있다. 북쪽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이 18일 오후 관영 <조선중앙통신>과 문답을 통해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에 대한 전면 참여 등을 통해 가하려는 어떤 압력도 우리에 대한 노골적인 대결포고 선전포고로 된다”고 거듭 경고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총참모부 대변인은 “서울이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불과 50km 안팎에 있다는 것을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영삼 정부 시기 북쪽의 ‘서울 불바다’ 발언을 연상시키는 협박이다.

이 대통령은 18일 조찬을 겸한 긴급 관계장관회의에서 “원칙은 확고하게 지키되 상황에 대처할 때에는 종합적이고 전략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며, 피에스아이 참여 발표 시점을 21일 개성 회동 이후로 미루라고 지시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북쪽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것인지 일단 들어보자는 뜻에서 (피에스아이 참여 발표) 시기를 조율하기로 한 것”이라며 “피에스아이 참여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피에스아이 문제는 ‘북한과 무관하다’는 정부의 공식 설명과 달리 이미 남북관계의 ‘뜨거운 감자’가 됐고 그만큼 정부의 선택은 어려워졌다. 정부가 남북관계를 고려해 피에스아이 참여 발표 시기를 또다시 뒤로 미루면 ‘북한에 끌려다닌다’는 보수세력의 비판이 거세질 수 있다. 반대로 정부가 피에스아이 참여 발표를 강행하고 북쪽이 맞대응에 나서 개성공단이 문을 닫게 되거나 우발적 군사충돌이 벌어진다면, 남북관계 파탄의 책임을 뒤집어써야 하는 부담이 있다. 또다른 전직 고위 당국자는 “정부가 쓸데없이 피에스아이 카드를 꺼내들어 진퇴양난의 늪에 빠졌다”며 “남북관계를 관리하려면 당국간 대화가 필수적인 만큼 이제라도 정책을 재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