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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일월드컵 16강전 - 대한민국 vs 이탈리아
2002년 한일월드컵 16강전 - 한국 vs 이탈리아
[2002년 한일월드컵 16강전] 한국 2-1 이탈리아
'Again 1966'

한국과 이탈리아의 월드컵 16강전이 열린 대전 월드컵경기장 관중석에서는 붉은 악마의 주도로 위와 같은 카드 섹션이 벌어졌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이 이탈리아를 1-0으로 꺾고 8강에 오른 신화를 재현해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이 카드섹션처럼 한국축구는 66년 북한이 그랬던 것처럼 이탈리아를 제물로 또다시 8강 신화를 이룩했다.

사실 월드컵 4강 7회에 우승 3회를 기록하고 있으며 통산성적 39승 17무 13패로 브라질, 독일에 이어 역대 3위를 달리고 있는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는 여러모로 벅찬 상대임에는 분명했다.

파워와 골결정력을 겸비한 '황소' 크리스티안 비에리(인터 밀란), 세계 최정상급 플레이메이커로 칭송받고 있는 프란체스코 토티(AS 로마), 이탈리아 축구의 영웅 로베르토 바지오의 후계자라고 불리우던 테크니션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유벤투스), 그리고 이탈리아 대표팀의 심장이자 수비의 핵 파올로 말디니(AC 밀란)까지...

비록 말디니와 함께 '세계 최강의 스리백'을 형성했던 알레산드로 네스타(라치오)와 파비오 카나바로(파르마)가 각각 부상과 경고누적으로 빠지긴 했으나 한국전에 나선 이탈리아 베스트 11의 면면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올 만 했다.

사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대전월드컵경기장의 분위기는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경기시작이 30분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도 몇 군데 빈 좌석이 눈에 띄었고 선수들이 몸을 풀 때조차 조예선 3경기에서 보여줬던 열정적인 응원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어느 팀보다도 홈팬들의 성원이 필요한 '이탈리아'와의 대결이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경기가 시작되고 난 뒤 이와 같은 우려는 불식됐다. 붉은 악마 섹터에서 관람을 했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경기장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는 없었겠지만 느낌은 분명 좋았다. 특히 경기시작전과 양팀 선수 입장시 선보였던 'Again 1966' 카드섹션을 전광판으로 봤을 때의 느낌은 짜릿함 그 자체였다.

마침내 한국이 월드컵에서 맞이하는 최초의 16강전이 시작되었고 상대는 '우승후보'이자 '수비축구의 마에스트로' 이탈리아, 부족함이 없다.

한국은 3-4-3시스템으로 이탈리아에 맞섰다. GK에 이운재, DF에 주장 홍명보와 김태영, 최진철, MF 김남일, 송종국, 이영표, 유상철, FW에 안정환, 설기현, 박지성.

이탈리아는 한국축구의 강한 프레싱과 투쟁심을 견제하려는 듯 초반부터 거칠게 한국선수들을 몰아부쳤다. 토티와 비에리, 델 피에로 트리오를 앞세운 이탈리아의 공격은 예리했으며 크리스티아노 자네티(인터 밀란), 다미아노 토마시(AS 로마), 지안루카 잠브로타(유벤투스) 등의 미드필더들은 김남일, 유상철 등 한국 허리진과의 싸움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거칠게 대응했다.

그렇지만 오히려 득점기회는 한국에게 먼저 찾아왔다. 전반 4분 설기현이 파누치의 파울로 페널티킥을 얻어낸 것.

관중석에서는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이탈리아를 상대로 선제골을 얻는다는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1골 이상의 의미가 있다. 즉 1골을 선취한 뒤 촘촘한 수비망을 펼쳐 승리를 쟁취한다는 전통적인 이탈리아식 축구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모든 관중의 시선은 페널티킥을 찰 안정환의 발 끝에 모아졌고 안정환은 골대 왼쪽으로 정확하게 찼다. 코스와 킥의 정확성은 충분히 만족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이 공은 이탈리아의 골키퍼 지안루이지 부폰(유벤투스)의 손 끝에 걸리고 말았다. 부폰이 왜 '세계 최고의 골키퍼'로 칭송받는지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후 이탈리아는 거칠게 한국을 몰아부쳤고 한국은 힘든 싸움을 계속해 나가야 했다. 그렇게 잘 들어맞던 패스웍도 조금씩 목표점을 벗어나기 일쑤였고 이탈리아의 조직적인 수비망 앞에 공격의 활로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전반 18분 이탈리아는 토티의 코너킥을 비에리가 헤딩골로 연결, 1-0으로 앞서나간다. 최진철의 끈질긴 마크에도 불구하고 힘으로 눌러버리고 헤딩을 따내는 '괴물' 비에리의 파워를 새삼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탈리아에게 선제골을 내줬다는 것은 상대팀에게는 무척이나 골치아픈 일이다. 이탈리아에게는 지키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지킬 수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수비수들과 수비조직력이 있기 때문이다. 설령 브라질이라 할지라도 이탈리아의 수비를 상대로 골을 기록한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한국에게도 이것은 마찬가지였다.

선제골을 넣은 뒤 이탈리아는 공격보다는 수비에 비중을 두며 전통적인 축구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비록 카나바로와 네스타가 빠진 상태였지만 이탈리아의 수비망은 그 어떤 틈도 용납지 않을 만큼 짜임새가 있었다. 수비진영에 포진한 이탈리아 선수들은 각자의 지역을 선점하며 한국의 패스루트를 끊었고 이탈리아의 수비지역은 온통 파란색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여기에 비에리와 토티를 이용한 역습이 더해져 이탈리아 축구란 어떤 것인가를 느낄 수 있게 해줬다. 그리고 결국 한국은 아무 것도 못해보고 전반을 마쳐야 했다.

그러나 후반에 들어서자 경기의 양상은 변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는 공격수 델 피에로 대신 수비형 미드필더 제나로 갓투소(AC 밀란)을 투입했으며 잠브로타 대신 안젤로 디 리비오(피오렌티나)를 기용하며 본격적인 지키기에 들어갔고 이는 트라파토니 감독의 패착이었다.

잔뜩 웅크리는 이탈리아를 맞아 히딩크 감독은 수비수 김태영 대신 간판 스트라이커 황선홍을, 부상당한 김남일 대신 이천수를, 그리고 놀랍게도 주장이자 수비의 핵인 홍명보를 빼고 차두리를 투입하는 초강수를 두며 이탈리아를 강하게 압박했다.

황선홍, 설기현, 이천수, 안정환, 차두리...지극히 공격적인 성향의 선수 5명이 한꺼번에 그라운드에 나선 것이었다. 경기장에서 지켜보던 당시를 회상해본다면 부상으로 빠진 김남일은 제외하고 첫 번째 황선홍과 세 번째 차두리가 투입되었을 때는 나 뿐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안정환과의 교체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날 안정환의 플레이는 비록 결승골을 기록하기는 했지만 다소 실망스러운 것이었고 더군다나 체력 역시 거의 소진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의 선택은 단순한 공격력의 보충이 아닌 압도적인 공격력을 이용한 전면전으로 이탈리아의 수비축구를 격파하는 것이었다. 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대담한 공격전술에 나를 비롯한 모든 관중들은 희열을 느꼈다. 한국이 월드컵에서, 그것도 이탈리아를 상대로 5명의 공격수를 기용하는 초공격적인 전술을 선보인 것이다. 어찌 한국축구팬으로서 희열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멀티플레이어들이 수두룩한 한국은 유상철을 수비로, 박지성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이동시켰고 안정환 역시 미드필더로서의 역할을 수행했고 이들은 자신의 변화된 포지션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전반에 그토록 촘촘하며 빈틈이 없어 보였던 이탈리아 수비는 한국의 계속적인 공세와 압박 속에서 지쳐갔고, 뚫지 못할 것 같았던 그 거대한 빙벽에도 서서히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공략하면 뭔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전 관중은 "대한민국!"과 "필승 코리아"를 외치며 독려했으나 아쉽게도 시간이 없어 보였다. 어느덧 전광판 시계는 경기종료 2분전을 가리키고 있었고 모두들 "결국 이탈리아의 벽을 넘지 못하는구나."라는 생각에 낙담하고 있었다.

그 순간 기적이 발생했다. 황선홍이 우측에서 올려준 크로스를 크리스티안 파누치(AS 로마)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고 이를 달려들던 설기현이 왼발슛으로 마무리했던 것. 망연자실한 이탈리아 선수들의 표정과 기뻐 어쩔줄 모르는 한국 선수들의 표정이 모든 상황을 대변하고 있었다.

설기현 개인으로서도 이 골은 무척 중요할 것이다. 그 동안의 경기를 통해 훌륭한 경기력을 선보이고도 골결정력 부족으로 인해 팬들의 질타를 많이 받았던 그이기 때문이다. 사실 설기현의 플레이를 경기장에서 직접 보면 놀라움 그 자체이다. 쉴 새 없는 움직임으로 상대의 좌우 사이드를 유린하며 유럽 그 어느 선수에게도 뒤지지 않는 파워와 스피드, 키핑력을 갖춘 보기 드문 선수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전에서도 세계 최고라는 이탈리아 수비수 2명에게 둘러쌓인 상황에서도 결코 볼을 뺏기지 않고 결국 동료에게 연결시켜주는 키핑력과 보디밸런스는 절로 경탄이 나올 정도였다.

이런 활약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골기회를 여러번 놓침으로써 마음고생이 심했던 설기현에게 이번 골이 큰 선물이자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동점골을 기록하고 난 뒤의 경기장은 그야말로 거대한 용광로 그 자체였다. 동점골 이후 약 5분 동안의 후반전, 그리고 잠시의 휴식시간과 연장전까지...경기장 안은 전율이 일 정도로 관중들의 굉음으로 가득 찼다. 이것은 그렇잖아도 체력의 부담을 느끼고 있던 이탈리아 선수들에게는 엄청난 압박감으로, 그리고 역시 지쳐있을 한국 선수들에게는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는 활력소로 작용했을 것이다.

연장은 그야말로 한국의 압도적인 공세 속에서 근근히 버티는 이탈리아의 형세였다. 내 살아 생전 이런 날이 또 올까 싶을 정도로 한국은 '아주리 군단', '세계축구의 한 축' 이탈리아를 거세게 몰아부쳤다. 공격에 공격을 거듭하는 한국과 승부차기를 노리는 듯 소극적으로 수비에 치중하는 이탈리아...뭔가 바뀐 것 같지 않은가? 우리가 공격을 거듭하고 '이탈리아'가 승부차기를 노리는 듯 수비에 전념하다니 말이다.

그리고 연장 전반 13분, 토티가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의 시뮬레이션 액션으로 경고를 받았고 결국 경고 2회로 퇴장 당했다. 이탈리아 선수들과 벤치는 이에 대해 거센 항의를 계속했으나 이는 분명 정당한 조치였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탈리아 축구에 대해 존경심을 갖고 있으며 이탈리아 선수들 또한 좋아한다. 그러나 경기가 끝난 뒤 토티건 등 심판판정에 대한 이탈리아 선수단과 언론의 어처구니없는 비판에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이것이 과연 '세계축구계의 거인' 이탈리아의 역량, 수준이란 말인가. 믿어지지 않을 뿐이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토티의 퇴장이 승패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미 연장 들어서 이탈리아의 체력은 고갈된 느낌이었고 한국은 쉴 새 없이 이탈리아 문전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다시 경기로 돌아가자. 연장 후반에 들어서자 관중들은 걱정하기 시작했다. 비록 이탈리아가 월드컵에서 승부차기 징크스가 있다고는 하나 승부차기는 한국에게 여러모로 불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그날 경기를 포함, 2번의 페널티킥을 놓친 경험이 있고 이것은 선수들에게 큰 부담감으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이런 큰 무대에서 승부차기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것도 한국에게는 핸디캡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설기현의 골과 거의 흡사한 시간대인 경기종료 3분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세계축구계가 경악할 사건이 터졌다. 페널티킥을 놓치며 비운의 스타가 될 뻔 했던 안정환이 이영표가 왼쪽 사이드에서 올려준 크로스를 그대로 헤딩골로 연결시키며 골든골을 성공시킨 것이었다. 안정환의 옆에서 말디니가 같이 점프를 시도, 아니 시도하려고 했으나 그에게는 이미 체력이 고갈된 상태였다. 말디니 자신은 점프했다고 생각했으나 몸은 마음을 따라주지 않았고 안정환은 홀로 솟구쳐 침착하게 헤딩슛을 성공시켰다. 부폰도 꼼짝못하는 골이었다.

미국전에서 기록한 역시 안정환이 기록했던 헤딩골과 거의 흡사한 이 골은 한국축구사에 영원히 기록될 만한 골이었으며 월드컵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골이었다. 또한 이탈리아로 진출하기 전까지 헤딩골은 전무하다시피 했던, 그리고 현재도 머리보다는 발을 이용한 득점이 주특기인 안정환이 월드컵에서 헤딩으로만 2골을 넣은 것도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안정환은 특유의 세레모니인 반지에 키스를 하며 기쁨을 만끽했고 선수들도 일제히 안정환을 덮쳤다. 관중석이 난리가 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눈 앞에서 이탈리아가 나뒹굴어지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고 그 누가 흥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패배가 믿기지 않은 듯 허탈하게 라커룸으로 돌아가는 이탈리아 선수들, 그리고 털썩 누워버린 채 한참을 일어나지 못하던 골키퍼 부폰과 관중석에서 건네 받은 태극기를 손에 손에 들고 경기장을 돌며 관중들과 하나된 기쁨을 누리고 있는 한국 선수들, ...

승자와 패자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으며 항상 패자의 입장에 서 있던 우리가, 한국축구가 승자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행복하고 감격스러운 것이었다. 언제나 미지의 대상이자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8강의 벽을 허문 대표팀 선수들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고마울 따름이다.

1966년 북한이 이룩했던 8강 신화로 잠시나마 세계축구의 중심에 편입됐던 아시아 축구는 그 이후 오랜 기간 변방을 떠돌며 무시당했었다. 94년 사우디 아라비아의 16강 진출과 한국의 선전으로 인해 반짝했으나 98월드컵에서 아시아 축구는 다시 한번 세계축구의 벽을 실감해야 했었다. 북한의 신화를 재현한 것이 바로 우리라는 점이 무엇보다 뿌듯하다.

이제 이탈리아에 이어 스페인이다. 지금 나는 기분 좋은 흥분 속에서 스페인전을 기다리고 있다.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 우승후보를 연파하며 세계축구의 변방이 아닌 중심에 서 있는 한국의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이탈리아와는 또 다른 스타일, 중앙에서의 정교한 패스웍을 바탕으로 화려한 축구를 하는 팀이 바로 스페인이다. 아마도 강하게 압박하는 한국을 상대로 역시 공격으로 맞상대할 것이 분명하다. 이탈리아전과는 다른 화끈한 축구가 기대된다.

'붉은 악마'의 한 서포터에 의해 만들어진 'We all will be there for you'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의 가사에는 이런 부분이 있다.

<꿈만은 아냐..이 세상 최강이 된다는 것은...언제까지나 기억해줘..We all will be there for you>

내 살아 생전에 이룰 수 없는 막연한 꿈이라고만 생각했던 이 가사가 어느덧 단지 꿈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 아마 이런 생각을 하게된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축구의 건투를 빈다! 파이팅!!

글: 스포탈 코리아 이상헌
사진: 카드섹션을 하고 있는 붉은 악마
 
내용출처 : 대한축구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