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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김병호]

우리가 마주잡았던 건 손이 아니라고 하자

우리가 부둥켜안았던 건 피톨 요동치는 몸이 아니었다고 하자

우리 목청 가득 차 흘러넘쳤던 건 함성이 아니라고 하자

그래서 그래서 우리는 지금 사람이 아니라

그냥 흩어져 날리는 가루라고 해도

생생한 기억은, 아직도 쟁쟁한 살냄새는 어쩌란 말인가

외면하자, 태양 아래 우리가 보았던 지척을, 거기 피었던 꽃들을

그래서 우리가 태고부터 혼자라고 혼자였다고 하더라도

아직도 가시지 않은 체온은 어쩌란 말인가

긴 밤 우리가 주억거렸던 것을 반성이라 하지 말자

그날 이래, 서로가 서로의 생에 불 켜주는 일 따위는

다시는 하지 않더라도

여럿이 손잡는 일 다시 없더라도

죽지 않는 기억, 살 아래 깊게 고인 서로의 체온은

어떻게 어떻게 지우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