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쌀 지원, 아무 조건 없이 100만 톤을 보내자


최근 남북한 사이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정부는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5천 톤의 쌀을 수해를 당한 북한에 보냈다. 북한도 이에 화답하여 억류되었던 어부를 보내고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하였다. 우리는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있는 이 일을 환영한다. 현 정권 이후 전쟁 위기로 치닫던 남북 관계에 이를 계기로 화해의 길이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5,000톤은 아사 위기의 북한 주민을 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과거 정부 시절의 통상적인 지원 규모 40만 톤이나 2006년 수해 때의 10만 톤에 비해서도 너무 적다. 북한은 올해만 열 차례 이상의 수해를 맞았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명령으로 수십 대의 비행기와 함정까지 동원해 5,000여명의 주민을 안전하게 구조했다.”고 전할 정도로 신의주와 압록강 주변 지역의 홍수는 심각한 지경이다. 평상 시 북한의 연간 식량 부족량이 100만 톤인데 경제난에 더하여 최악의 수해까지 당하였다면, 아사자가 속출하는 참극도 일어날 수 있다.

반면에 남한은 현재 쌀이 남아돌아 여러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올해 수확이 끝나면 유엔식량농업기구가 권장하는 적정량 72만 톤의 두 배가 넘는 149만 톤가량의 재고가 쌓인다. 해마다 수천 억 원이 보관비용으로 낭비되고 있으며, 쌀값 폭락으로 농민들의 시름은 하루가 다르게 깊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40만 톤의 쌀을 북한에 지원해도, 변동직불금 예산 절감액은 6천억 원, 쌀 재고 관리비 연 1, 200억원(10만t당 연 300억원)과, 시장가격으로 사들인 쌀을 전량 가공용·주정용으로 헐값 판매할 때의 예상 손실 6천억 원 등 연간 1조 3천억 원대의 예산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북한에 쌀을 지원하는 일은 남한으로서도 재고비용을 절약하고 쌀값의 폭락을 막으며, 이 비용으로 취약계층을 지원하여 1석 삼조의 경제 및 복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실용적’ 대안이다.

그럼에도, 현 정권은 조건을 달아 지원규모를 늘리자는 국민의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 현 정권의 실세인 이재오 특임장관은 지난 19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하여, “북한 내부의 변화가 없다면 무조건적인 지원은 북한의 체제만 강화시켜준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면서 “(남한에서 보낸) 쌀이 북한의 군량미가 될까봐 무조건 지원해주면 안 된다는 우려가 있다.”며 “북한이 그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혀줘야 정부에서 지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금 북한 동포들은 남북관계 파탄에 따른 경제난과 엄청난 수해로 죽느냐 사느냐하는 생존의 기로에 처해 있다. 굶주려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밥을 미끼로 조건을 제시하는 것은 스스로 인간이기를 거부한 야만이다. 더구나 그 대상이 우리 동포라면 그는 반민족적 행위에 다름이 아니다. 우파 의사가 죽음에 처한 응급환자가 좌파라고 치료를 거부하는 일은 없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정치적 논의를 떠난 문제다. 밥과 인간의 생존 앞에 이데올로기란 한갓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는 조건을 달지 말고 100만 톤 이상의 쌀을 지원하여 북한 주민의 민심을 얻고 남한 농민을 시름에서 건지며 경제도 살리는 묘책을 선택해야 한다. 아울러 이 기회에 매년 되풀이 되는 북한의 홍수를 근원적으로 막을 수 있도록 관개시스템을 정비하고 홍수방지 시설을 설치하는 사업에 남한 당국이 나서야 한다.

금수도 먹이를 주는 사람은 해하지 않는 법이다. 만약 정부의 주장대로 북한 당국이 쌀을 군량미로 전용한다면 북한 주민은 북한 당국에 등을 돌릴 것이다. 북한에 쌀을 지원하는 것은 북한 주민의 지지를 얻는 첩경이기에 통일로 가는 두터운 신뢰의 벽을 쌓는 길이다. 현 정권이 진정으로 북한의 적화야욕을 꺾고 평화적인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면, 아무 조건 없이 100만 톤의 쌀을 지원해야 한다. 이는 남북한 모두에게 실익을 주는 지극히 실용적인 대안이며, 평화통일의 굳건한 초석을 놓는 길이며, 민족으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인도적 조처다.

2010년 9월 20일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