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의 폭설, 철부지가 때쓴다고...

화해와 협력은 이미 대세, 전시납북자법 웬말

 

서상철(6.15경기본부 공동대표)

 

펑펑 함박눈이 참 잘도 내린다. 하루종일 내린다. 한겨울에도 이렇게 내릴까 싶다. 텁텁하고 차가운 황사바람이야 봄의 불청객으로 이해하고 간다지만, 개나리 진달래가 망울을 터치고 아지랑이 피어올라야 할 시절에 함박눈이 하루종일이라니.

계절을 모르고 내리는 눈을 보고 ‘아이참 아름다워라’하는 이가 몇이나 있을까,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지. 눈이 그리 온다고해서, 찬바람이 그리도 매섭게 분다고 해서 오는 봄이 다시 돌아가리라고 믿는이는 몇이나 있을까

철부지라는 단어가 참 많이 생각나는 요즘 날씨다. ‘철부지’란 ‘철이 없는 사람’이나 ‘계절을 모르는 어리석은이’를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 날씨만 철부지 같은게 아니다.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위정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영락없이 요즘 날씨와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개성과 금강산이야 대표적인 남북화해와 협력의 상징이지 않은가. 통일을 눈꼽만치라도 생각하는 정부라면 다 놓치고 가더라도 이것만은 부여잡고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웬걸 이거부터 불통시키고 아무 대책없이 끌고 있으니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리고 대북지원단체는 남북을 오가는 동포애의 표현이지 않은가, 물질이 가는 곳에 마음도 가게 되고, 주고받는 온정 속에 싹트는 화목한 미래, 얼마나 기막힌 통일준비 사업인가. 그런데 대북지원단체들이 매우 곤란한 지경에 처해 있다. 자기 임무를 다할 수 없으니까 그렇다. 더군다나 서로 체제비방을 하지 말자고 약속하고선 풍선에 반북삐라를 날려보내는 거는 또 뭔가? 아무리 철부지라지만 유치하기가 이를데가 없다.

천만 이산가족의 마음속에는 이미 열렸던 상봉의 문이 또다시 닫히는걸 가만히 지켜볼 이는 없을 것이다. 또한 개성과 금강산 관광의 두절로 오는 경제적 피해자들이 어마어마하게 늘어가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도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농민들의 원성은 또 어떤가, 대북지원이 끊기면서 오히려 쌀값 폭락으로 이어진데 대한 분노를 어떻게 해결할런지. 그리고 평양을 비롯해 북녘을 오고간 그 수많은 사람들이 체험한 남북교류의 감동스런 실체를 어떻게 무슨 힘으로 막을 수 있을까.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으로 하여 이미 시절은 봄이다. 이미 파릇한 통일의 새싹내음을 맡아버렸고, 땅을 뚜치고 나오는 개구리의 옴짝임을 이미 봐 버렸다. 북녘동포와 얼싸안고 춤추며 술잔을 기울였던 엊그제의 추억이 잊혀지기에는 너무 생생하다. 이미 주고받은 것이 있어 중단하면 손해이고 함께하면 이득이란 것이 너무나 명백한 현실로 체험하고 말았다.

그런데 통일의 새봄을 열어갈 바통을 넘겨받기보다는 이제와서 다된 밥에 재 뿌리기라도 하듯 남북경색이라니. 그래도 이것을 꽃샘추위라고 그나마 이해하려면 할 수도 있겠는데 이제는 한술 더 떠서 소위 “6.25전쟁 납북피해 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이 9월에 시행된다고 한다. 물론 북에서는 “위기에 처한 남북관계를 더욱 파국에로 떠미는 분별없는 망동”이라고 극렬히 비난하고 있다. 남북관계에 찬바람이 불더니 폭설까지 내리고 있는 것이다. 북쪽에서는 소위 납북자들을 의거입북자들이라고 하고 있으며 “그들 속에는 영웅도 있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교수, 박사들도 적지 않다. 그것은 지난 시기 여러 차례에 걸쳐 진행된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을 통하여 남조선(남한) 사람들도 인정하고 감탄하고 있는 사실”이라며 “이런 사람들에게 납북자의 모자를 억지로 씌우는 것은 그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독이고 우롱이 아닐 수 없다”고 불쾌함을 표시하였다. 그리고는 오히려 45만여 명이 전쟁기간에 남으로 납치돼 갔다며 역공을 펴기도 한다.

이게 아니라도 싸울 일은 많은데 또 싸움거리를 만들어 놓았다. 이산가족 상봉의 길은 보란듯이 막아놓고 서로가 수십만의 납치자를 내놓으라고 대치하게 생겼으니 참말 추워진다.

오는 봄을 막으려 하는 철딱서니 없는 짓은 그만두고 그 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를 찾는 것이 현명할 텐데...그걸 알면 철부지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