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남북관계 전망은 '흐림'
<해설> 통일부 2009년 업무보고의 의미
2008년 12월 31일 (수) 23:52:26 김치관 기자 ckkim@tongilnews.com
이명박, “남북관계 근시안적으로 봐선 안 된다”

2008년 마지막 날 청와대에서 진행된 통일부의 2009년 업무보고 내용이 알려지면서 새해 남북관계 전망도 결코 밝지만은 않다는 것이 중평이다.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정세변화를 예의주시하면서, 새로운 남북관계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겠다”면서도 “북한의 태도변화가 없는 한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될 전망”이라고 보고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 1년 남북관계를 새롭게 하기 위한 조정기를 보냈고, 우리는 일관성과 원칙을 의연하게 대처해 왔다”며 “앞으로 남북관계를 어설프게 시작해서 힘들게 만들어가는 것 보다는 어렵지만 잘 시작해 튼튼하게 남북관계를 쌓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이런 장기적 관점에서 남북관계를 풀어갈 것이고, 남북관계를 너무 근시안적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화해협력 정책에 입각해 쌓아온 남북관계를 일거에 무너뜨린데 대해 반성이나 정책전환 대신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조정기’에 나타나는 불가피한 상황으로 정당성을 부여하고, 내년에도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김하중 장관은 29일 기자단과의 오찬에서도 “모든 건 범사에 때가 있다”며 김대중 정부 시절 남북관계가 정상화하는데 2년 반이 걸렸다는 점을 상기시킨 바 있다.

업무보고서에서 △미국 신정부의 대북정책 △북핵문제의 진전 여부 △북한의 정세 △우리 국민들의 대북정책에 대한지지 정도 등 ‘정세변화’에 따라 “새로운 남북관계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겠다고 명기해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전환 의지보다는 북미관계 등 외부 여건의 변화에서 남북관계 전환의 계기를 찾겠다는 발상이 엿보인다.

신중한 태도와 대화의지 강조 불구 정책전환 없어

김하중 장관은 이날 업무보고서 ‘2009년 통일업무 추진계획’을 통해서는 ‘비핵.개방.3000’이나 ‘나들섬’ 등을 언급하지 않고, 금강산 사건에 대해서도 진상조사 요구를 명기하지 않는 등 비교적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특히 “올해에도 주요한 계기에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정부 의지를 표명해 북이 호응해 나오도록 촉구해 나갈 것이다”며 “필요하다면 좀 여러 가지 다양한 채널을 통해, 활용해 우리 대화 의지를 전달할 방안도 앞으로 적극적으로 검토할 생각이다”고 말해 나름대로 적극적 대화의지를 표명했다.

또한 “특사 문제는 하나의 방안일 수 있지만 아직 저희들이 구체적으로 생각하거나 검토한 적은 없다”고 말해 일말의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김 장관은 대화를 재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고, 대통령에게도 “의지만 밝혔다”고 답했다. 신중한 태도와 대화의지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한, 남북 대화 재개를 위한 구체적 정책수단은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 장관은 보고서에 없는 ‘비핵.개방.3000’에 대해서도 기자회견에서 “내년부터는 이 구상의 사업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행해 나갈 것인가에 중점을 둘 계획이다”며 “상생공영 정책을 일관되게 실현하는 것이 비핵.개방.3000이다”, “비핵.개방.3000이 같이 간다고 이해하면 된다”고 말해 기본 입장이 변하지 않았음을 재확인했다.

결국 신중한 태도와 대화의지 표명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비핵.개방.3000’ 구상의 연장선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어떤 구체적 대안도 내놓지 못하고 외부여건이 바뀌기만을 기다리는 자가당착에 빠진 것이다.

우선 추진 경협사업들, “10.4선언에 포함”

김 장관은 업무보고서에 등장하지 않은 6.15, 10.4선언에 대해 기자회견에서 “6.15, 10.4선언은 여러 번 이야기했고 북한도 우리가 뭘 이야기하는 지 정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한번도 무시하거나 부정한 적 없고, 특히 10.4선언의 경우 얼마든지 만나서 모든 문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우리가 이행할 수 있는지 없는지, 양측이 합의만 보면 우리도 얼마든지 이행해나갈 용의가 있다”고 기존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번 업무보고에서 사실상 중심 내용을 차지하고 있는 경제협력 부문을 설명하면서도 “농수산 협력, 지하자원 개발, 개성공단 3통, 철도.도로 현대화 사업 등은 10.4선언에도 포함돼 있는 사업이고, 또 우리 경제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업이다”며 “정부는 상황이 개선되면 이런 사업들을 북과 협의해 우선적으로 추진해 나갈 생각이다”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사실상 10.4선언 이행을 논의하자는 기존 대북 제안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지만 거꾸로 북측이 요구하고 있는 6.15, 10.4선언에 대한 명백한 입장 표명 만은 절묘하게 피해가 북측의 호응을 끌어낼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이외에도 “내년부터는 식량지원을 무상으로 전환할 것이고, 만일 그 지원이 이루어지게 되는 경우에는 분배투명성을 강화해나가도록 하겠다”, 국군포로.납북자문제와 관련 “기존 해결방식 극복, 보다 근본적 문제 해결 노력”, “통일부에서 오늘 보고한 사항은 아니지만 정부로서는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고 관계부서와 노력할 것이다” 등 현 정부의 코드에 맞는 내용들이 다수 포함되었다.

특히 남북협력기금 투명성 강화를 지속 추진하겠다며 매년 ‘남북협력기금 백서’를 발간해 기금 사용내역을 공개하고 ‘남북협력기금 평가단’을 구성.운영하겠다고 밝혀 남북협력기금 집행을 보다 엄격히 제한하고, 민간단체의 대북지원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비쳤다.

남북, 손바닥 맞부딪쳐 소리날까

결국 통일부의 업무보고와 김 장관의 기자회견을 요약하면 1년도 못돼 남북관계를 파탄시킨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조정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 근간을 바꾸지 않고 유지하되 외형상의 신중한 태도와 대화 의지 강조를 통해 북측의 호응을 유도하고 외부 여건의 변화를 포착해 새로운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여기에 더해 지금까지 본격적으로 손을 대지 못했던 △분배투명성 △국군포로.납북자 문제 △북한 인권 문제 △협력기금 투명성 문제 등까지 현 정부의 입맛에 맞게 끌고가겠다는 의욕까지 분명히 하고 나섰다.

우리 정부의 이같은 입장을 북측이 수용해 대화에 호응해 나서거나, 외부여건의 변화를 ‘계기’로 대화가 재개되는 상황을 예상해볼 수 있지만 아무래도 대북정책의 전환이 없는 한 북측의 호응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북미관계 진전 등 외부적 여건의 변화를 우리 정부가 따라가는 방식 외에는 새해에도 남북 간에 ‘손바닥이 맞부딪쳐 소리가 나는’ 상황을 보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6.15, 10.4선언에 대한 존중과 이행의지를 명백히 밝히고, '비핵.개방.3000' 구상 대신 상생공영 정책과 실용주의 정신에 맞는 현실적인 대북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남북관계 전환의 지름길이라는 지적에 정부는 귀기울여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