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 두고 온 수술가방 - 의사 오인동의 북한 방문기
오인동 (지은이) | 창비

정   가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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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리지 : 360원(3%)
2010-09-10 | ISBN 8936471945
반양장본 | 360쪽 | 210*140mm
알라딘 Sales Point : 779
마이리뷰 평점 : / 1
천안함사건으로 한반도에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던 지난 6월, 평양에서 북녘의사들과 함께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있었다. 세계적 인공관절수술 전문가 오인동, 바로 그 사람이다. 이번 수술여행은 그의 네번째 방북이었다. 이번에 그는 천안함사건에 대한 북녘사회의 반응을 현지에서 지켜보았고, 평양에서 6?25 기념일을 맞았으며, ‘지도원 동무’와 함께 북한팀의 축구경기를 응원했다(고려호텔에서 정대세 선수를 만나기도 했다). 이 책은 그가 1992년부터 2010년까지 지난 20여년간 평양을 방문하며 북녘동포들과 나눴던 소통과 신뢰를 담은 방북기다.

책머리에

1장 닥터 오, 평양에 갑시다
-1992년 10월

평양에 갑시다!
잠 못 이루는 평양의 첫날 밤
만경대고향집에서 대동강까지
사회주의사상만큼이나 거대한 건축물들
고려호텔로 숙소를 옮기다
돈 한푼 안 낸다는 사회주의 의료제도
강연중에 화를 내고 만 나의 오만
묘향산 보현사와 국제친선전람관
그리운 금강산
새로운 지식을 갈망하는 북한의사들
평양의 마지막 밤

2장 가는 길 험해도 웃으며 가자
-1998년 1월

Korea-2000의 결성
끝내 이루지 못한 다리수술
6년 만에 다시 평양으로
금수산기념궁전에서
그들의 눈물은 자발적인 것인가
“가는 길 험해도 웃으며 가자”
한자리에서 오래 일하는 전문가들
“나중에 웃는 자가 더 행복하다”
다시금 꽉 맞잡은 두 손
냉방 초대소에서의 따뜻한 대화
평양에서 서울로, 다시 미국으로

3장 평양으로 떠난 수술여행
-2009년 5월

평양에서 접한 노대통령 서거와 북핵실험
평양으로 떠난 수술여행
고난의 행군은 끝난 것인가
17년 만에 다시 만난 정형외과 의사들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의 어린이들
인공고관절수술을 집도한 첫 외래의사
두 여성이 불러준 통일 아리랑
강연장을 꽉 메운 의료인들
사회과학자들과 논한 통일국호 Corea
손가락 걸고 약속한 재회
인민대학습당을 둘러보다
어느 초대소에서 나눈 이야기들
다시 가야 할 그곳

4장 다시 두고 온 수술가방
-2010년 6월

천안함, 또하나의 대형사건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다시 찾아간 평양의학대학병원
고구려의 흔적, 대성산성과 안학궁터
1년 만에 확 달라진 병동
월드컵 축구와 호텔에서 마주친 정대세 선수
평양에서 맞은 6?25 기념일
개선청년공원에서 들은 웃음소리
북한식 야외 바비큐파티
신뢰, 통일로 가는 원동력
평양거리를 걷는 인민들의 모습
다시 두고 온 수술가방
안경호 위원장과 나눈 대화

20여년간 통일과 의업(醫業)의 두 길을 걸어온 한 의사의 진심어린 소통의 기록

저자 소개부터 하자면, 그 이력이 참으로 독특하다. 그는 남한 출신 재미동포로, 하버드의대 정형외과 조교수와 MIT 생체공학 강사를 역임했다. 세계 3대 첨단의학 가운데 하나인 인공고관절수술법 개발과 고관절기 고안으로 11종의 발명특허를 획득하고 수차례 학술연구상을 수상한 저명한 의사다. 1990년대 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불편한 다리를 수술하기 위해 환자와 의사로서 특별한 인연을 맺기도 했다(2장 참조). 한편 그는 『뉴욕타임즈』 『LA타임즈』 『노틸러스』 등의 매체에 남북문제에 관한 글을 기고하고, 클린턴과 오바마 정부에 한반도정책 건의서를 전달하는 등 분단극복을 위해 왕성한 활동을 벌여온 통일운동가이기도 하다(그가 이제껏 발표한 논문과 칼럼들은 이번에 함께 출간된 『통일의 날이 참다운 광복의 날이다』(솔문)에 담겨 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로스앤젤레스 인공관절연구원 원장과 6?15공동선언실천 미국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으며 여전히 통일과 의업의 두 길을 걷고 있다.
한평생 인공고관절수술 연구에만 몰두해온 그가 북녘으로 눈을 돌리게 된 계기는 1992년 첫 방북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재미한인의사회 방북대표단에 속하게 된 저자는 미지의 땅에 대한 호기심과 북녘 의료계를 돕고 싶다는 막연한 희망으로 생전처음 북녘 땅을 밟았다. 저자의 눈앞에 펼쳐진 북한의 모습은 어느 것 하나 새롭지 않은 게 없었다. 1장 곳곳에서 ‘부끄럽다’는 단어가 눈에 띌 만큼 저자는 자신의 무관심을 탓하며 분단현실에 새로이 눈을 뜨게 된다. 여기서 재미있는 에피쏘드 하나. 북녘의사들을 상대로 의학강연을 하게 된 저자는 인공고관절이라는 최신의술을 전해주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만, 정작 시큰둥한 북녘의사들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 저자는 참지 못하고 강연 도중 버럭 화를 내고 만다(1장 참조).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의학을 얘기하러 온 사람이지, 여러분들의 의술을 훔치러 온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미국 CIA 지시를 받고 온 사람도, 남한의 안기부 끄나풀로 온 사람도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럴 수가 있습니까?!”
나도 모르게 흥분되어 단숨에 내지르니 장내가 숙연해졌다. 강당 뒷자리에 앉아 있던 권회장과 이부회장의 표정은 말이 아니었다. 왜 그런 말까지 하느냐고 질책하는 듯했다. 반면 안기부까지 운운하며 떠들었는데도 리정호 동무는 오히려 담담해 보였다. 의사들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이러다가는 강연이 아주 중단되고 말 것만 같아 서둘러 이 어색해진 분위기를 수습해야겠다고 생각했다.(73면)

극도로 방어적이고 수세적인 북녘사람들의 태도에 적잖이 당황하지만, 며칠 뒤 호텔로 찾아와 최신수술법에 대해 열심히 물어보는 한 의사를 보며 저자는 소통의 희망을 발견한다.
그후 저자는 본격적으로 모국의 근현대사를 공부하며 통일운동에 뛰어들었다. 1997년에는 보다 체계적인 활동을 위해 ‘Korea-2000’이라는 통일연구기구를 결성하는데, 그해 말 남한에서는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북한에서는 김정일이 로동당 총비서로 추대되면서 남북관계에 새로운 희망이 움트기 시작했다. 이에 Korea-2000 위원들은 통일의 염원을 담아 ‘조국통일정책건의서’를 작성했고, 저자는 이를 남과 북에 전달하기 위해 두번째 방북을 한다. 당시 북한은 악화된 북미관계와 연이은 자연재해로 힘겨운 ‘고난의 행군’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난방조차 되지 않는 냉장고 같은 여관방에서 코트를 입은 채 새우잠을 자며 저자는 북녘인민들의 어려움을 뼈저리게 느끼고 돌아온다.
세번째 방북은 2009년 5월에 이루어졌다. 인공고관절수술을 전수해주기 위한 본격적인 수술여행의 시작이었다. 1992년 당시 고려호텔 강당에서 저자의 강연을 들었던 의사들과 17년 만에 재회하여 함께 수술을 집도했다. 수술 도중 전력이 떨어지거나 사용하는 의학용어가 달라 우왕좌왕하는 일도 발생했지만,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문제를 해결해나갔다. 그러던 어느날, 수술을 마치고 나온 저자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북이 제2차 핵실험을 강행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이 두 대형사건에 대한 평양의 반응, 그리고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북녘사회의 현실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올 6월, 저자는 또다시 인공관절기와 의료품으로 가득 찬 가방을 들고 평양으로 떠났다. 전력난을 겪었던 작년과 달리, 북한은 새롭게 변모하고 있었다. 전력문제로 수술이 중단되는 일도 없었고, 여기저기 공사가 재개되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눈에 띄었다. 한낮 동안 “원쑤 미제를 짓부시자”는 선동구호가 온통 신문을 장식한 6월 25일 밤, 북녘 텔레비전은 16강 진출이 달린 남한팀의 경기를 중계해주고 있었다. “‘남선(한국)’이라도 이겨야지요. 다 같은 우리 민족인데요”라는 북녘의사들의 반응은 저자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무적인 변화는 바로 그들의 태도였다. 그들은 더이상 예전처럼 숨기거나 피하려 하지 않았다. 이제 진정한 소통이 시작된 것이다.

통일이라는 대업도 결국은 사람 사이의 소통과 신뢰에서 시작된다
작년만 해도 의사선생들은 나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도 쉽사리 꺼내지 못했다. (…) 그런데 이번 수술여행에서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먼저 나서서 무릎관절기뿐만 아니라 어깨와 팔꿈치 관절기에 대해서도 물어왔고, 고안연구를 도와달라고 청하기까지 했다. (…) 2년여에 걸쳐 함께 어깨를 비벼대며 수술을 하다보니, 부담감이 점점 없어져가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게 무슨 뜻일까? 자신들을 진솔하게 이해해주는 상대에 대한 신뢰가 아니겠는가? (…) 평양의학대학병원 의사선생들과의 인연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결실은 바로 이 신뢰였다. 이 신뢰야말로 통일로 가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335~336면)

저자의 표현대로 지난 20여년에 걸쳐 그가 얻은 가장 소중한 결실은 바로 ‘신뢰’였다. 누구를 만나건 그는 마음을 열고 진심어린 소통을 시도했다. 그렇다고 그가 북한에 무조건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오랜 공부를 통한 균형잡힌 시각을 바탕으로, 때로는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거침없는 비판을 내뱉는다. 고위직 관리 앞에서도 쓴소리를 마다않았다. 서로간에 신뢰가 있다면 비판이야말로 진정 그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상대방과 모든 의견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다름 속에서도 결국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신뢰를 쌓은 것이기에 더욱 그 의미가 깊다.
평양을 떠나던 마지막날, 함께 수술했던 의사와 간호원들은 그에게 앞으로는 더 자주 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 그는 기꺼운 마음으로 떠날 것이다. 또다시 꽉 채워온 인공관절기를 모두 기증하고 텅 빈 가방으로 돌아오겠지만, 그 안에는 신뢰와 형제애가 한가득 채워져 있을 것이다. 통일은 그만큼 한걸음 더 가까이 오지 않겠는가.
혹자는 너무 이상적이고 감성적인 이야기라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의 말마따나 통일이라는 대업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과 신뢰에서 시작될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지 10년, 문제의 해결은커녕 통일을 언급하기조차 어려워진 요즘, 사회과학도의 차가운 이성이 아니라 한 의사의 뜨거운 가슴으로 써내려간 이 방북기는 우리에게 통일을 향한 희망의 실마리를 보여줄 것이다.

나는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평양으로 떠나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그리고 언제든 다시 갈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서 내 수술가방을 평양에 두고 오지 않았는가? 이 방문기를 분단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한 재미동포 의사의 감성적이고 이상적인 감회일 뿐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하지만 나는 세상사 모든 일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과 신뢰로 이루어진다고 굳게 믿는다. 그 믿음을 바탕으로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북녘동포들을 만나고 소통해왔다. _‘책머리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