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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前대통령 서거]최후까지 “민주주의·남북관계 후퇴 방관말라”
 김광호기자 lubof@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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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한국사회 위기·과제 온몸으로 웅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삶의 마지막까지 ‘행동’하는 정치가였고, 지도자였으며, 투사였다.

거침없이 MB정부 비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5월28일 서울역 앞에 차려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를 찾아 조문한 뒤 “현 정부 들어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비판 발언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후퇴하는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 ‘서민의 삶’에 대한 열정과 우려가 동인(動因)이었다. 바로 필생의 업으로 삼아온 ‘민주·평화·민생’의 3대 화두이며, 그것은 지금 한국 사회의 위기와 과제를 온몸으로 웅변한 유언이었다. 그래서 그의 끝나지 않은 ‘마지막 정치’는 이제 ‘시민’들의 유산으로 남았다.

김 전 대통령은 무엇보다 민주주의 수호에 전력을 기울였다. 새해 벽두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 경제, 남북관계의 3대 위기에 처해 있다. 올해 최대 화두는 민주주의”(1월1일 김대중도서관 신년인사회)라는 판단에서였다.

용산 철거민 참사는 서민과 약자들의 삶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이어졌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가 반석에 섰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며 “정치라는 것이 가난하고 서러운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 잘사는 사람을 위한 정치가 무슨 필요가 있나”라고 탄식했다. 그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전인 지난 5월12일 민주당 지도부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선 이명박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직격했다. 검찰·경찰·국가정보원 등 권력기관을 동원한 ‘공안 통치’ 흐름에 대한 ‘경고’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언’의 수위는 한층 높아졌다. 5월23일 서거 소식을 접한 직후엔 “평생의 민주화 동지를 잃었고 민주정권 10년을 같이한 사람으로서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이라고 비통해 했다.

5일 뒤인 28일 서울역 분향소를 직접 찾아 조문한 자리에선 “국민들이 왜 이렇게 슬퍼하고 모여드는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국민은 지금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전례없이 빈부 격차가 강화돼 어려움 속에 살고 있다. 남북관계가 초긴장 상태에 있어 속수무책으로 슬픈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는 때로 그를 과거 투사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6월11일 ‘6·15 남북정상회담 9주년’ 특별강연에서 “50년간 피흘려 쟁취한 민주주의가 역행하고 위태로워졌다”며 “마음속 피맺힌 심정으로 말한다. 우리가 진정 평화롭고 정의롭게 사는 나라를 만들려면 행동하는 양심이 돼야 한다. 방관하면 악의 편”이라고 ‘행동’을 당부했다. “독재자에게 고개숙이고 아부하지 말자”고도 했다. “반드시 이기는 길이 있다. 나쁜 정당에 투표를 안하면 되고, 나쁜 신문을 보지 않고, 집회에 나가고,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된다”(6월25일)고 ‘비폭력 불복종’의 지침도 내놨다.

악화일로의 남북관계에 대한 걱정도 깊었다. 김 전 대통령은 미발표 유고작인, 지난달 14일 주한 EU상공회의소 초청 연설문에서 ‘9·19로 돌아가자’면서 현 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을 촉구했다. 앞서 지난달 10일 생전 마지막 인터뷰인 영국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퇴임 후 사태가 급변해 지금의 제2의 냉전시대가 온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매우 슬프다”고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정면 비판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경색된 남북관계에 대한 우려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조언을 통해 위기국면 타개를 위해 여력을 다했다. 지난 5월18일 방한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대북특사 등을 조언했고, 이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과 미국 여기자 석방으로 성과를 보기도 했다.

지난달 13일 이후 병상의 김 전 대통령은 ‘화해·통합’의 상징으로 마지막 정치적 여정을 정리했다. 각계 인사 800여명이 직접 문병한 투병 37일 동안 그의 정적이거나 정치적 라이벌이던 김영삼 전 대통령(10일), 전두환 전 대통령(14일),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15일) 등까지 그를 찾아 ‘해원’에 나서면서다.

결국 김 전 대통령은 우리에게 미완의 민주주의, 미완의 한반도 평화, 미완의 민생의 과제를 남기고 떠났다. 그것은 이제 온전히 남은 이들의 몫이다.

<김광호기자 lubof@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