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6자회담' 공세에 MB정부만 '대략난감'

북, 6자회담 '전제조건' 사실상 거둔듯

정지영 기자
jjy@vop.co.kr
  • 천안함과 함께 침몰했던 6자회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 9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성명 발표 후 북한이 던진 메시지는 ‘6자회담’이었다. 중국도 천안함 페이지를 접고 6자회담으로 넘어가자는 발언을 내놓았다.

    의장성명에 대한 한.미와 북.중의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지난 4개월 여 간 멈춰 섰던 6자회담 재개 분위기가 다시 조성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북, 6자회담 ‘전제조건’ 사실상 거둔 듯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의장성명 발표 하루 뒤인 10일 의장성명 10항에 무게를 실으면서 “우리는 평등한 6자회담을 통하여 평화협정 체결과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일관하게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잠깐 시계를 천안함 사건 이전으로 돌려보자.

    지난 3월 초 상황은 북한과 미국이 6자회담 재개에 있어 접점을 찾아가는 단계였다. "불평등한" 6자회담 틀 자체에 대한 회의감을 토로해왔던 북한의 경우 회담에 앞서 신뢰 조성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대북 제재 해제와 평화협정 논의 등이 선결적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에 따라 중국이 낸 중재안이 북미대화-예비회담-6자회담의 3단계 프로세스였다. 사전 단계에서 북이 제기한 ‘조건’을 어느 정도 다뤄보겠다는 이 안에 대해 관련국 간 양해가 이뤄지고 있었다.

    의장성명 채택 후 북의 발언은 ‘6자회담을 통해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진전시켜 가겠다’는 것. 북이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분위기 조성’ 등 복잡한 표현을 쓰지 않고 ‘6자회담’을 단정한 것은, 중국의 적극적인 중재 하에 그간 6자회담 재개의 ‘조건’으로 걸었던 대북 제재 해제 문제를 일단 거둬들인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6자회담에 나오라'고 미국에 공을 넘긴 것이다.

    중국이 강하게 이끌고...미국도 적당히 끌려오고

    미국도 일정 시점에서 6자회담 재개 분위기로 국면 전환을 꾀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조속히 6자회담이 재개돼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공동으로 수호할 수 있게 되길 촉구한다”(친강 중국 외교부 대변인)면서 중국이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데다, 유엔 안보리 성명을 “환영”하는 선에서 천안함 정국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은 미국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질러놓은 한미연합군사훈련을 거둬들이기엔 모양이 빠지기 때문에, 미국으로선 가능한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 범위에서 훈련을 소규모로 진행해 체면치레를 한 후 본격적으로 출구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13일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강한 요구로 연합훈련을 서해와 동해에서 동시에 진행하되 미 항공모함 등 핵심 전력은 동해로 돌리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리언 시걸 뉴욕 사회과학원 연구원은 12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가까운 미래에 6자회담이 재개될 수 있다”면서 이유를 “미국이 6자회담 재개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동안 ‘6자회담 재개’를 부르짖어온 것은 미국이었다.

    13일 한 차례 결렬되긴 했으나 유엔사와 북한군 대령급 실무회담이 아직 살아있다. 북미가 한 테이블에 마주 앉게 되는 것. 이정철 숭실대 교수는 "실무회담에서 장성급 회담 일정이 잡히면, 거기에서 대충 결론을 내고 6자회담에 돌아가는 것"을 전망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공조해온 한국과 미국은 오는 21일 서울에서 열릴 외교.국방장관(2+2) 회담에서 출구전략과 6자회담 재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고, 예정된 한미연합훈련이 끝난 후쯤 관련국 간 물밑접촉이 활발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천안함 연계전략’ 한국정부만 ‘대략난감’

    이처럼 6자회담은 회담 그 자체보다, 천안함 정국 전환을 위한 출구로도 관련국들에 매력적인 요인이 되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이제 상황을 안정화시킨 다음 결국 6자회담 출구전략으로 가자는 것이 (관련국들이)합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한국 정부다. ‘선 천안함 문제 해결, 후 6자회담 재개’를 공식 입장으로 밝혀온 데다, 안보리 의장성명에 대해서도 맥락상 북의 공격을 규탄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빠져나올 문이 없다.

    정부의 입장은 아직 '오락가락' 하고 있다.

    일단 통일부가 12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와 연 간담회에서 개성공단 체류인원 제한 문제를 유연하게 관리하겠다고 밝힌 것이나, 원태재 국방부 대변인이 같은 날 "(대북 심리전을 하겠다는)약속을 지키기 위해 바로 할 수는 없다...남북관계도 고려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은 이전보다 완화된 기류로 읽힌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지난 11일 “동북아에 이해관계를 가진 모든 나라가 천안함 사태에서 벗어나 정상적 상황으로 가는 게 중요하다”면서 “북한을 너무 자극하지 않고 퇴로를 열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해 ‘출구전략 모색’을 시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에선 “북한이 먼저 천안함 사건에 대한 사과 또는 잘못을 인정하고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선을 긋는 발언도 흘러나온다. 이 같은 발언이 국민 정서를 감안한 것인지, 실제 북의 '사과'를 천안함 '종결'로 설정하고 있는지는 정부 내에서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정철 교수는 이같은 언급에 대해 "의장성명이 나왔으니 그에 따라야 하는데, 의장성명에 북한이 사과하라는 부분은 없다. 그러니까 우리가 거기에 추가 조건을 붙이는 셈"이라면서 "외교적 레토릭으로는 유의미하다 해도, 실제로 어떤 액션을 요구하는 발언이라면 출구가 될 수 없다"고 우려했다.

    6자회담이라는 출구를 향해 관련국들이 움직이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삐끗하면 정국 전환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6자회담 재개 국면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