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의 눈물

 

-이애령 호노리나(예수회 수녀, 대전성모여고 전 교장수녀)

 

밀양에 다녀왔다.

그동안 공사중단과 공사재개를 수없이 거듭해온 밀양송전탑 건설.

한전은 2013523일 공사를 재개했다가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에 공사를 중단했으나 101일에 또다시 공사를 재개했다. 농사수확을 앞둔 절묘한 시기에 재개한 것이다. 할매 할배들은 1년 동안 땀 흘려 지은 농사 추수를 포기하고 공사를 막기 위해 다시 산 위로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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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명의 천주교환경활동가들이 송전탑 건설문제로 고통 받고 있는 밀양 어르신들에게 작은 힘을 보태고자 1017일부터 19일까지 밀양감물생태학습관에서 23일간의 워크숍을 하면서 프로그램에 한전의 공사강행에 저항하고 있는 밀양주민들의 농사일 돕기를 포함시켰다. 그러나 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주민들이 명분 없는 밀양송전탑공사 중단과 사회적 합의기구 구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밀양주민들의 의견서를 청와대에 전달하기 위해 1018일 새벽에 서울로 가셔야했기 때문에 일손 돕기를 하지 못하고 공사현장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제일 먼저 방문한 곳은 한전이 송전탑건설을 위해 자재들을 쌓아놓고 헬리콥터기를 이용하여 공사현장으로 운반하고 있는 금곡헬기장이었다. 밀양시청의 행정대집행 대상으로 지정되어 철거될 위험에 처했으나 102~3일 희망버스를 타고 달려온 시민들과 부산교구 사제들과 밀양을 방문했던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들과 수녀들이 힘을 합하여 철거를 막아낸 곳이다. 1018일에 헬기장 앞 움막을 지키던 주민들은 산외면 보라마을의 어르신들이셨다. 금곡헬기장 앞 움막을 지켜야하는 이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시고 마지막에는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움막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헬기가 자재를 운반하는 것을 막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할 때에는 한없는 무력감을 느낍니다.”하시면서 눈시울을 붉히셨을 때 우리 가슴도 먹먹해질 수밖에 없었다.

KakaoTalk_dcb998ad6157edb4T.jpg그 다음으로 우리가 방문한 곳은 상동면 도곡리 어르신들이 농성하고 있는 상동역이었다. 상동면 도곡리 이장은 그 마을 주민 중 가장 젊으신 분으로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17일째 단식을 하고 있었다. 모두 합해야 30명도 안되는 주민들(도곡리 주민 전체 주민)이 도로변에 앉아계시고 80세도 넘어 보이는 어르신 한분이 우리를 반기며 이렇게 도로변에 나올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야기하셨다. 어르신들은 1시간마다 몇 가지 구호를 외치고 계셨는데 우리도 그분들과 함께 구호를 외쳤다. 그중에서도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라는 구호를 외칠 때에는 눈물이 쏟아져 내릴 것 같아서 목이 메었다. 시골 노인들에게는 금융자산이 없다. 평생 땀흘려 농사를 지어온 땅이 그들의 모든 것이다. 그 땅을 빼앗는 것은 그들의 생존권을 빼앗는 것이다. 한전이 제시하는 보상금액은 가구당 400만원이다. 그 돈을 가지고 할매 할배들이 가서 여생을 지낼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옮겨 우리가 방문한 다음 장소는 평리 마을이었다. 기초공사가 끝나서 콘크리트만 부으면 철탑이 세워지는 곳이다. 가파른 산길을 조금 올라가니 다 죽이고 공사해라. 주민일동이라는 구호를 써붙인 비닐천막이 눈앞에 보인다. 주민들은 모두 서울로 가셨고 활동가 3명이 천막을 지키고 있었다. 그곳에서 주먹밥을 먹고 우리는 마지막 방문 예정지인 바드리마을로 향했다. 바드리에는 10여명의 활동가들이 있었고 엄청난 숫자의 경찰들이 주둔해 있었다. 공사현장으로 향하는 우리를 막는 경찰과 30분 이상을 실갱이하다가 경찰과 대치된 상황에서 묵주의 기도(천주교 기도의 한 가지)15단 바치고 활동가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워크숍장소로 돌아왔다.

 

밀양주민들이 9년 동안 송전탑건설에 저항하고 있는 근원이 된 것은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주민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한 사업방식이고, 밀어붙이기 사업방식 뒤에는 초법적인 전원개발촉진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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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소
·송전탑·변전소 등 전원개발사업은 다른 법률(자연공원·농지·산지관리·군사기지시설보호·장사법 등)에 따른 까다로운 허가·인가·면허·결정·지정·승인·협의 등 절차를 뛰어넘는다. 특히 사업자가 개인소유 땅을 강제수용해도 소유자는 아무런 권리행사를 할 수 없다. 이렇게 개인의 기본권을 무시하는 악법은 당장 폐지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밀양어르신들이 9년 동안 한전에 대항하여 싸우신 결과로 많은 변화가 이루어졌다. 우선 첫 번째로 많은 국민들이 핵발전소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에 따른 원전비리가 속속 밝혀지게 되었다. 그리고 전원개발촉진법 일부가 변경되어 앞으로 송전선로 계획시 반드시 주민의사가 반영되도록 하였고 전기생산회사가 송전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한전에서 더 이상의 765Kv송전탑은 세우지 않도록 내부방침이 정해졌다. 앞으로도 갈 길은 멀지만 많은 변화를 이루어낸 밀양주민들에게 감사하며 지금 당장 그들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멈추게 하기 위하여 우리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