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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구상에 호응할까?
<칼럼> 남북대화와 북핵문제 분리가 관건 -정창현
2013년 03월 05일 (화) 11:19:42 정창현 tongil@tongilnews.com
정창현 (<민족21> 대표, 국민대 겸임교수) 


첫 여성 대통령 시대가 열렸다. 취임 전 평양을 방문한 경험을 가진 첫 대통령이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2월 25일 취임사에서 공약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언급하며 남북대화 추진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검증이 제대로 되지 않은 인사들을 국무위원으로 내정함으로써 인사청문회가 언제 끝날지 가늠조차 어렵고,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 강화 등으로 한반도 정세가 위기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라 박근혜 정부의 첫 출발은 험로가 예상된다. 

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북한이 국제사회의 규범을 준수하고 올바른 선택을 해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진전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확실한 억지력을 바탕”으로 “남북 간에 신뢰를 쌓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겠습니다”라고 언급했다. 

대북정책과 관련된 박 대통령의 취임 일성에서 구체성을 찾기는 어렵다. 역대 대통령들이 취임사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제시했던 것과 달리 박 대통령은 원론적으로 남북대화 만을 언급했다. 대화를 통해 신뢰를 쌓고 이를 통해 남북관계 현안을 풀어가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국내외 정세와 취임사의 내용으로 볼 때 빠른 시일 내에 남북대화가 열리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우선 취임 전에 한 명의 각료도 정식 임명을 하지 못했고, 취임식 다음날에야 가까스로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의 국회 임명동의안이 처리됐다. 문제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점이다. 지명된 장관 후보자들이 하나 같이 각종 의혹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의혹, 전관예우, 본인과 아들의 병역기피 의혹 등은 기본이고, 각종 비리 의혹으로 현기증이 날 정도다. 오죽 했으면 조.중.동 보수언론조차도 김병관 국방장관 후보자에게 대해 “어느 나라가 무기중개상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하나”라며 “사퇴해 명예라도 건져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고, “전관예우 후보자들 알아서 물러나라”고 촉구할 지경이다. 

약속했던 탕평인사와도 거리가 멀다. 야당은 ‘나홀로 인사’, ‘밀봉인사’라고 폄하하고 있다. 지지율도 44%로 추락했다. 잘못된 인사와 공약 후퇴가 주 요인으로 평가된다. 

박 대통령 스스로 취임사에서 “정부와 국민이 서로를 믿고 신뢰하면서 동반자의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라고 밝혔지만 출발부터 불통을 자처해 이미 약속 자체가 공염불(空念佛), 구두선(口頭禪)에 그쳐 버렸다. 

이러한 국내 상황 때문에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분야는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김장수 국가안보실장-홍용표 통일비서관-류길재 통일부장관으로 짜여졌지만 전반적으로 인사가 늦어지면서 대북정책을 짜는데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다. 더구나 국가안보실장에 이어 국정원장까지 육군참모총장 출신을 지명해 ‘대화’보다는 ‘안보’에 방점을 찍었다. 

또한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이에 대응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결의안 통과, 북한의 추가 대응 가능성으로 남북대화에 적극 나서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유엔 안보리는 조만간 군사적 행동을 담고 있는 유엔헌장 7장을 명시적으로 거론하지 않는 대신 과거 제재결의들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결의안을 통과시킬 예정이다. 

북한은 2월 12일 3차 핵실험 직후 대변인 담화를 통해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채택 움직임 등을 겨냥해 ‘보다 강도 높은 2차, 3차 대응조치들’을 경고하면서 “적대세력들이 떠드는 선박검색이요, 해상봉쇄요 하는 것들은 곧 전쟁행위로 간주될 것이며 그 본거지들에 대한 우리의 무자비한 보복타격을 유발시키게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만약 박근혜 정부가 유엔안보리 결의안을 근거로 해상봉쇄에 동참하거나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에 따른 훈련을 강화할 경우 북한은 추가 핵실험이나 장거리 로켓 발사로 맞설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한미연합사령부와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독수리(3.1~4.30)/키리졸브(3.11~21)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이 군사훈련에 대해 북은 “당신측이 끝끝내 ‘방어적’이요, ‘연례적’이요 하는 허울을 쓰고 또다시 무모한 ‘키 리졸브’, ‘독수리’합동군사연습을 강행하는 것으로 침략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단다면 그 순간부터 당신들의 시간은 운명의 분초를 다투는 가장 고달픈 시간으로 흐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만 어떤 수단으로 주한미군과 한국군을 고달프게 할지는 밝히지 않았다. 따라서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 강화와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예정돼 있는 3월 한반도의 위기감은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박근혜 정부가 대북접촉에 나서려면 4월은 돼야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3월 위기상황을 잘 관리해 남북간 충돌이 발생하지 않을 경우를 상정한 것이다. 지난 1월 중순경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인사가 상견례 차원에서 접촉을 가졌고, 당시 분위기가 좋았다는 소문도 있다. 그러나 북핵실험으로 정세가 급변해 이러한 소문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상황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남북대화를 위한 물밑 접촉을 서두르지 않으면 대북 공식창구를 만들고,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구체화 하는데 더 시간이 걸려 올해 하반기는 돼야 의미 있는 접촉이 가능할 수도 있다. 

이마저도 북한의 호응이 전제돼야 한다. 박 대통령의 구상은 공식적으로 군 출신인사를 외교안보라인의 전면에 내세워 ‘안보’를 강조하면서 비공식라인을 통해 북한과의 대화를 타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박근혜 정부에 대단히 우호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고, 북한측도 일단 대화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구체적인 대북구상을 타진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일단 긍정적인 요인이다.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표방하고 있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통해 북한 측을 설득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한반도 비핵화’를 중심으로 대북정책이 짜여져 있다. 그러나 1월 22일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 직후 북은 ‘9.19공동성명 사멸과 한반도 비핵화 종말’을 선언했고, 이어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무효화 선언’을 했다. 이를 통해 북은 핵보유국의 지위 굳히기에 나서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북의 핵보유를 어차피 막을 수 없다면 그 핵이 외부로 이전되는 것만은 막는 것이 현실적일 수 있다는 발언이 계속 나오고 있다. 비확산이란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사실상 인정한 상태에서 북한의 핵무기와 기술이 외부세계로 확산하는 것을 막자는 것으로 핵확산금지조약(NPT)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NPT 체제의 붕괴를 막기 위한 대안일 수도 있다. 존 케리 국무장관도 2월 13일 “북한의 핵실험은 미국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비확산 노력에 위협이 되는 만큼 유엔 차원의 신속하고, 강력하고, 확실한 대응에 나서야 한다”며 보다 명확히 ‘비확산’을 거론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초부터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 무효화 선언에 대응하고, 미국의 북핵 ‘비확산’ 논란에도 대처해야 하는 이중의 위기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추진되기도 전에 좌초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4대강사업, 부자 감세 등 이명박 정부가 남긴 부정적 유산은 지난 5년간 허송세월한 남북관계와 한반도비핵화 문제에도 짙게 드리워져 있는 셈이다. 

가장 관건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기초해 우선 남북대화를 복원해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는 한편, 비핵화문제를 북미대화 또는 6자회담을 통해 해결하려는 정책 분리, 즉 남북대화와 북핵문제를 분리해 대응하는 선택을 박근혜 대통령이 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북한은 “하루빨리 핵을 내려놓고, 평화와 공동발전의 길로 나오기 바랍니다”라는 박 대통령의 취임사에 실망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 5년을 거치면서 북한은 남쪽 정부와는 ‘한반도비핵화’ 문제를 논의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 듯하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에서 박근혜 정부가 서로 대화하고 합의를 하나씩 실행에 옮겨 신뢰를 쌓아갈 수 있을까? 이미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초기 로드맵은 실패했다. 북한과 대화 경험이 있는 대통령이 직접 통일부에 힘을 실어주고, ‘대화와 평화프로세스’를 새로 짜는 않는 한 박근혜 정부도 이명박 정부의 실패한 대북정책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한신대, 방송대, 상명대 등에서 강의했다. 1994년 중앙일보 현대사연구소(통일문화연구소)에 전문기자로 입사해 10년간 주로 남북 현대사, 남북관계 분야 기획연재를 담당했다. 

KBS "현대사 다큐멘터리 극장",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등의 방송프로그램에 자문으로 활동했으며, 통일부.국가기록원 자문위원과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한국역사연구회에서 활동하며 『한국현대사』(1~4),『한국역사』,『한국역사입문』등의 집필작업에 참여했다. 

저서로 『곁에서 본 김정일』,『인물로 본 북한현대사』,『변화하는 북한 변하지 않는 북한』,『북한사회 깊이 읽기』,『북녁의 사회와 생활』,『CEO of DPRK 김정일』,『KIM JONG IL of NORTH KOREA』,『남북현대사의 쟁점과 시각』 등을 출간했다. 

공저로 『발굴자료로 쓴 한국현대사』,『실록 박정희』,『WWW.한국현대사.com』,『남북정상회담600일』,『朝鮮半島のいちばん長い日』, 『박병엽증언록1-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탄생』,『박병엽증언록2-김일성과 박헌영 그리고 여운형』등이 있다. 

현재 (주)이제이컨설팅 대표, 국민대 교양과정부 겸임교수,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집행위원, 경실련 통일협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